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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수용으로부터의 평안함

by 권승호


초등학교 때 위인전을 읽다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고 결국은 책 읽기를 그만둔 적이 있다. 모순 때문이었다. 이성계가 정몽주를 살해하였음에도 두 사람 모두 위인(偉人)으로 평가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결국은 책이라는 것은 진실이 아닌 거짓이라 생각되어 읽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세상은 모순덩어리고 그것마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래서 책 읽기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오늘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지닐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를 해 본다.

모순된 내 모습에 부끄러움이 밀려옴을 느낀 적이 많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부터 나뿐만 아니라 인간들 모두가, 현재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모순된 존재였다는 깨달음이 왔고 그때부터 모순된 나를 발견하고서도 죄책감 느끼지 않고 합리화하면서 위안 삼곤 하였다. 모순된 나의 말과 행동에 당당해지려 노력하였고 주위 사람들의 모순된 언행에도 관대해지려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괴로움이 사라지고 평안함이 몰려왔다. 미소가 내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행복의 조건 중 하나가 인간은 누구나가 모순덩어리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에게 수면욕 식욕 성욕이 원천적 욕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평안에 도달하는 것처럼 인간이란 원래 모순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현재보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평안해질 것이며 이해와 용서와 사랑이 솟구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라 시킨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라 시킨다.

나도, 아내도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해 본 지 오래다.

어느 날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끼적여본 시다. 다음과 같이 끼적여보기도 했다.

엄마는 참 이상하다.

나 더러는 나이 많은 형이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나이가 많은 엄마는 왜 나이 적은 우리에게 양보하지 않는 것일까?

엄마는 진짜 이상하다.

나와 동생이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싸우는 것이라고 야단치면서

엄마 아빠가 큰 소리로 싸우고 나서는

대화했던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엄마는 참으로 이상하다.

모순된 언행에 대해 흥분하며 분노하지 말 일이다. 너만이 모순 아니고 나 역시 모순덩어리이니까. 너만이 이중 잣대를 가진 것 아니라 나 역시 이중 잣대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세상의 모순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문학에 모순 어법이 있음을 통해 또 모순 속에 진리가 포함되어 있음을 통해, 그리고 그 모순 어법이 이상하게도 우리의 가슴에 와닿음을 통해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소리 없는 아우성’, ‘외로운 황홀한 심사’,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고와서 서러워라’ 등의 시구(詩句)가 얼마나 우리를 감동시켰던가?

‘완벽한 행복은 행복을 찾지 않는 순간에 있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에야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다.’ ‘내 작곡은 슬픔에서 솟아난다.’ ‘세상 사람들에게 아주 커다란 기쁨을 주는 그 음악들은 내 가장 깊은 슬픔 속에서 태어난다’는 말도 확연히 드러나는 모순이지만 분명히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기에 충분한 말이면서 동시에 삶의 오묘한 진리를 제시해 주는 말 아닌가?

모순에 부끄러워 말고 모순에 관대할 일이다. 우리 모두는 부족함투성이 인간이요, 모순덩어리 인간이니까. 갑자기 황희 정승의 지혜가 생각난다. 황희 정승에게 하소연하는 하녀에게 “네 말이 옳구나"라 이야기하고, 그 하녀와 싸웠던 다른 하녀에게도 “네 말도 옳구나."라 이야기 하였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부인이 “두 사람이 서로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데 왜 둘 다 옳다고 하십니까?”라고 따지자 “당신의 말도 옳소”라 말하였다는 일화 말이다.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모순 앞에 당당한 정승의 태도에 고개 숙일뿐이다.

고집부리며 자신만이 옳다고 큰소리치지 말 일이다. 정답이 반드시 하나인 것 아니니까. 내가 옳은 것일 수 있겠지만 상대방이 옳을 수도 있으니까. 아니 그보다는 나도 옳고 상대도 옳은 경우가 인간 세상에는 더 많은 것이니까. 같이 있으면 혼자 있고 싶다가 혼자 있으면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을 가진 존재가 우리 인간이니까. 남이 하면 불륜이지만 자신이 하면 로맨스이니까. 자신이 잘못했을 땐 이해받기를 바라면서 남의 잘못은 용서할 줄 모르는 존재가 사람들이니까. 모순에 부끄러워 말 일이다. 분노하지도 말고 관대할 일이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의 행복과 평안함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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