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멈추자마자 일어선다. 그리고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로 5분 이상을 기다린다. 성질이 급하여서라고 생각하였었는데, 지난 여행에서는 성질 급하여서가 아니라 부화뇌동(附和雷同)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새치기하여 빨리 나가는 사람이 없음을 통해서 빨리 나가려는 마음에서 일어섬이 아님은 분명했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 짐 찾는 곳에서 짐이 나를 기다렸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빨리 비행기에서 일찍 내렸다 할지라도 공항을 빨리 빠져나가느냐 늦게 빠져나가느냐는 수화물을 빨리 찾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결정하였다. 비행기에서 일찍 내리는 것과 공항을 먼저 빠져나가는 것은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어찌 나만 알겠는가? 그럼에도 비행기가 멈추자마자 일어서는 것은 다른 사람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건 나만의 오해일까? 무단횡단할 생각이 없었는데 남들이 무단횡단하니까 자신도 무단횡단을 한다. 남들이 특정 물건을 사니까 자신도 그 물건을 구매한다.
남들이 ‘예’ 하니까 자신도 ‘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남들이 ‘아니요’ 하면 자신도 ‘아니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이 A후보를 찍으면 자신도 A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들이 B를 찍으면 자신도 B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과 같이하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편안하고, 남들과 같으니 창피하지 않을 수 있고, 모나지 않아 정 맞을 걱정 하지 않아도 되어 좋을 수는 있지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나 역시 그동안의 삶은 ‘부화뇌동’의 삶, ‘따라 하기’의 삶이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관계가 어색해질까 두려워서 맞장구를 쳐주었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좋은 게 좋다는 생각으로 내게 크게 손해 되는 일이 아니라면 싫어도 좋은 척했던 경우도 많았다. 남이 새치기하는 것을 보고 죄의식 없이 새치기하였고, 용서해 주고 싶었지만 다른 선생님이 야단치니까 따라서 야단치고 처벌하였던 경우가 많았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남 눈치 보지 말고 따라 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면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여유가 생기고 행복이 배가된 느낌이다. 남이 옳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 생각되면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모두가 비난해도 내가 아니라 생각되면 그 사람을 변호하면서 소신을 밝혀본다. 모두가 1번의 방법을 택할 때에 2번을 택하기도 한다. 쉽지 않지만 그동안 부화뇌동하였던 부끄러움을 삭감해 간다는 기쁨은 맛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