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꼴찌였는데 수능 다섯 문제 틀렸다고?(1)

by 권승호

수능 점수 발표일, 5교시 수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앉자마자 교무부장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2012년도 졸업생 박현우라고 아세요?”

“2012년이면 6년이 지났네요. 아! 생각이 나네요. 알지요.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인가 내가 담임한 학생인 것 같은데요.”

“3학년 때 담임하셨다고 했어요. 그 학생, 공부 좀 했던가요?”

“아닌 것 같은데요. 내 기억에 그 친구 거의 하위권이었는데. 그런데 무슨 일 있나요?”

“수능 점수가 너무 잘 나와서요. 국어 2등급, 수학 1등급, 영어 1등급, 사회탐구 두 과목 모두 1등급 받았네요.”

“뭐라고요? 정말이에요?”

믿기지 않았다. 공부에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던 현우의 얼굴이 선명하게 되살아날수록 고개는 더 심하게 흔들렸다. 다른 학생도 아니고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하던 박현우가, 그것도 국어만 제외하고 모두 1등급이라니. 이건 거짓이고 사기다. 이건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다. 공부뿐 아니라 무엇 하나 제대로 잘한 게 없었던 아이, 희망 가질 수 없었던 아이가 아니었던가?

애써 어지러움을 참아내고 있던 내게 교무부장 선생님은 “궁금하면 전화해 보시든가요? 아까 학교에 왔을 때 선생님께 인사드리겠다고 해서 전화드렸는데 수업 들어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바빠서 가야 하고 다음에 다시 온다고 했는데, 전화번호 적어놓았으니 전화해 보세요.”

전화를 끊고 다시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혹시 커닝을……. 정신을 가다듬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군대 갔다 와서 열심히 했다고 할 때까지도 반신반의했는데, 지난해에는 1, 4, 2, 2, 3등급을 받아 전주교대에 낙방하였고 1년을 더 공부한 끝에, 이번에 전 영역에서 다섯 문제만 틀렸노라고 하였을 때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고 대견하게 느껴졌다. 당장 만나고 싶다고 하였더니 내일 찾아뵙겠노라 하였다.

식당에서 7년 만에 만난 제자는 성공자였고 스승이었다. 공부 열심히 하면 말도 잘하게 되는가? 시간의 힘이라고만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할 만큼 몰라보게 성장해 있었다. 말투에서도 표정에서도 행동에서도 어른스러웠다. 후배를 위해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강의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로서는 고맙다고 했다. 잘 준비해서 후배들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1주일 후, 그는 8년 후배 300여 명 앞에 당당한 자세로 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들 선배, 20◇◇년 2월 졸업생이고요, 이름은 박현우라고 합니다. 후배님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는 김승혁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아이들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미소를 교환하다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뭔가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음을 뒷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를 정말 못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도 커트라인 점수로 겨우겨우 들어왔고, 그 뒤로도 반 30명 중에서 25등 아래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야간 자율학습이 의무였었는데, 저는 거의 매일 도망쳤고 선생님은 도망칠 때마다 다음 날 아침에 엉덩이를 때렸습니다. 저는 조용한 학생이었음에도 공부 때문에 반에서 서너 번째로 엉덩이를 많이 맞는 학생이었습니다.

‘잠깐, 난 아니잖아. 나는 때리지 않았잖아. 김승혁 선생님은 아니라고 말해줘야 하잖아’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지금 제 머리 앞쪽에는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1학년 겨울방학 보충수업 때 출석부를 위조하고 도망갔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맞아 생긴 것입니다. 아직 그 흉터가 남아 있네요. 그런데 지금 제가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다고 선생님들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학창 시절을 그렇게 공부와는 담을 쌓고 보냈다는 것을 설명하려 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미소 짓고 있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강제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미소인지, 지금은 체벌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미소인지, 아니면 남의 불행을 통해 맛보는 미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하여 가장자리 통로를 따라 앞으로 갔다. 아이들 대부분은 뭔가를 얻어보겠다는 욕심으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었지만 몇몇 아이들은 잠을 청하고 있었고 몇몇 아이들은 벌써 졸기 시작하였다.

저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해 본 적 거의 없었고 당연히 성적은 언제나 하위권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서만 내면 합격하는 ○○대학교 ○○학과에 07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그 뒤 7년이 지난 후에 수능을 다시 치렀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성공은 아닙니다만, 전체에서 다섯 문제 틀렸고 400점 만점에 원점수로 384점, 평균 백분위는 97% 받았습니다. 노력의 결과라 이야기할 수도 있고 열심히 하면 누구나 맞을 수 있는 점수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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