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꼴찌였는데 수능 다섯 문제 틀렸다고?(2)

by 권승호

선배의 말을 잘 듣고 실천하기만 하면 자신도 선배처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었다. ‘공부가 무엇인지?’ ‘성적이 무엇인지?’ ‘대학이 무엇인지?’라고 중얼거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눈이 번쩍’이라는 표현은 이런 경우에 쓰라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를 아는 선생님, 특히 고3 담임 선생님이셨던 김승혁 선생님께서 많이 놀라셨습니다. 나이 많은 졸업생이 다시 수능을 보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워낙 공부를 못했었기에 어떻게 공부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오셨습니다. 성의껏 말씀드렸더니 그러면 너와 비슷한 후배 학생들에게 네가 희망을 좀 줬으면 좋겠다,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후배님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습니다. 여러분의 선배 중에 성공한 사람이 많이 있는데, 저는 오히려 저처럼 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래서 저한테는 사실 이 자리가 난처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공부법까지 포함해서 누군가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만큼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효율적인 공부법을 설명하기에 앞서 ○○대학교 입학 이후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하겠습니다.

공부는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현우는 못난 아이였다. 자신의 주장은 물론 의견조차도 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이상의 그 어떤 말도 해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존재감이 없었던 학생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그런데 지금, 그는 당당하게 단상 위에 서 있다. 그것도 300여 명의 청중을 앞에 놓고. 그리고 더 들어보아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말만으로도 그의 능력을 인정해주어야 했다. 목소리는 무게가 있었고, 세련되진 않았지만 이미 선생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공부하게 되면 이렇게 변하게 되는구나.’ ‘공부의 힘이 이런 것이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저는 ○○대학교에 진학해서 거기서도 꼴찌를 하면서 2년간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수업 시간에 들어가지 않거나 중간에 도망치곤 하였고 그래서 F 학점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대에서조차 꼴찌를 하였습니다. 저보다 낮은 성적을 받은 학생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주변 친구들조차도 저를 비웃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2년을 껍데기 대학생으로 놀다가 군대에 갔고 스물셋에 제대하였습니다. 제대하고 얼마 후에 아버지께서 간암 판정을 받으셨는데, 저는 망설임 없이 아버지를 위해 간 이식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 이식 수술 후유증이 생겨서 한 달 만에 개복수술을 한 번 더 하였는데, 부작용으로 췌장염에 걸려서 몇 개월 더 고생하였습니다. 그렇게 제 스물세 살의 한 해가 끝이 났습니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 저는 저의 인생이 잘못되어가고 있고 어떻게든 정상적인 방향으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보통 그 나이에는 공무원 시험을 생각하게 되는데, 저는 고등학교 공부에 미련이 남아서 수능을 다시 보려고 생각하였습니다. 수술하고 회복하던 시간은 공부에 워밍업 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더 가졌던,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간 이식 수술 전후로 조금씩 워밍업 하다가 본격적으로 지난해에 수능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현우가 물을 마셨다. 목이 말라 마시는 것이겠지만, 내게는 여유를 부리는 행동으로 보였다. 300명 앞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니…… 정말 공부의 힘은 위대하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다. 대단한 강사였다. 원고가 있었지만, 원고를 보지 않고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젊은이는 괄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40살 이전의 사람은 누구나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진리로 다가왔다. 공부만 못한 게 아니라 자기의 생각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였으며 운동도 음악도 못하였던, 오직 PC방만 좋아했던 아이가 이렇게 멋진 청년이 되었다는 사실은 내 몸을 꼬집어볼까 말까를 고민하도록 만들기까지 하였다.

처음에는 참담했습니다. 그야말로 백지상태였습니다. 국어는 70점 정도 나왔지만, 수학은 풀 수 있는 문제가 한 문제도 없었고 인수분해조차 할 줄 몰랐습니다. 영어는 where, what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학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공부는 자기가 해야 한다는 고3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학원비를 달라고 할 염치도 없었고 또 학원에 가서 나이가 한참 어린 동생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저는 학원에 한 번도 가지 않고 독학하였습니다.

지난해와 올해까지 2년간 공부했습니다. 처음부터 2년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고 최선을 다했는데 지난해 수능에서는 국어 1등급, 수학 4등급, 영어 2등급, 사회탐구 2등급, 3등급 이렇게 받았습니다. 평균 2.4등급 정도인데, 이 점수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가 없었기에 1년을 더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해 24살의 늦은 나이로 또다시 실패를 겪고 참담한 심정으로 방황하면서 고통스러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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