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배움보다 중요한 익힘(1)

by 권승호

절반 정도의 아이들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선생님 오셨다’라고 누군가가 소리 지르자 아이들은 엎드려 있던 친구들을 깨웠고, 반장은 일어나서 ‘차렷’을 외쳤다. 내가 장난 삼아 훈련병의 차렷 자세를 취하자 몇몇 아이들도 미소 지으면서 차렷 자세를 취했다.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근호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자율학습이지요?”

교실에 들어오기 전 자율학습을 하도록 하여야겠다고 생각하였음에도 넌지시

“글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자율학습이 좋아요. 다음 주 시험이잖아요.”

“어디, 한 번 조사해 볼까? 자! 수업하는 게 좋다는 사람 손들어 볼까?”

모두 손을 들지 않고 두리번거리는데 철수만 엷은 미소 지으면서 손을 들었다. 여기저기서 야유가 나오자 철수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손을 내렸다.

“좋아. 자율학습이다. 다만 자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한다. 모르는 것, 질문하도록 하고.”

아이들은 큰 은혜를 입은 양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면서 책을 펼쳤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후 3년 동안, 수업 시간에 자율학습을 시킨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였다. 교사의 임무는 가르치는 일이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야 아이들이 하나라도 더 많이 알게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수업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기 전에 수업을 끝낸 적도 없었다. 그리고 항상 나는 좋은 선생이라며 나 자신을 다독이곤 했다. 생각이 바뀐 건 1급 정교사 연수 때였다.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계신다는 강사 선생님은 자신은 아이들이 자율학습을 열심히 하기만 한다면 죄책감 없이, 망설임 없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율학습을 하도록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중요한 건 선생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앎이 일어났느냐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후, 나 역시 망설임 없이, 죄책감 없이 시험 전 한 시간은 반드시 자율학습을 하도록 하고 있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 차를 몰고 무작정 시내를 벗어났다. 한적한 시골길을 드라이브한 후 집으로 돌아오다가 우아동에 사무실을 열었으니 언제 한 번 들르라는 친구가 생각났다. 16년 동안 회사에 다니다가 3년 전에 전주로 내려와서 작은 사업을 하는 친구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화제가 교육으로 이어졌다.

“김 선생, 나, 자네 말 듣고 지난달부터 아들놈 과외 끊었네. 친구 덕분에 돈 많이 벌었네. 아들딸 과외비 아낀 돈으로 밥 한 번 살게. 아무튼, 이제는 학원 다니지 않고 자네 말대로 학교에 남아 야간 자율학습 하고 있네. 하지만 우리 아들, 모르는 게 많아 힘들어한다네. 나 또한 솔직히 걱정도 되고. 그래서 일요일에만 과외선생 집으로 오라고 해서 질문하도록 하였다네. 이 정도 과외는 괜찮겠지?”

당당함에 압도되었는지, 아니면 내 말을 인정해 주고 따라준 마음이 고마워 감격해서인지 기쁜 마음으로

“그래? 내 말 믿어주고 따라주니 고맙네. 잘했어. 사교육은 공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공부의 훼방꾼이지. 훼방꾼…… 토요일까지는 자율학습 하고 일요일에만 과외선생 오라고 해서 질문한다고? 그래, 그 정도는 괜찮지, 뭐…….”

헤어져 돌아오는데 찝찝한 그 무엇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어이 친구! 난데……, 아까 내가 한 말 취소하겠네.”

“…… 무슨 말인가?”

“응, 일요일에만 과외선생님을 집으로 오라고 해서 자네 아들의 질문에 답하도록 하는 과외는 괜찮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네.”

“……”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수화기를 타고 선명하게 다가왔다.

“자네 아들이 공부하다가 모르는 문제가 나왔다고 가정해 보세. 그때 자네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스스로 해결하려고 할까? 아니면 일요일에 과외선생님에게 물어보겠다고 생각할까?”

“글쎄, 아마 일요일에 과외선생님에게 물어보겠다고 생각하겠지.”

“바로 그것이네. 모르는 문제,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낑낑대며 풀어내야 실력이 향상되는 것인데, 일요일에 과외선생님에게 물어보겠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고민하여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을 것 아니겠나? 그렇게 되면 실력이 늘겠나? 늘지 않겠나?”

“……그러면…… 늘지 않을 것 같네.”

“그래. 운동선수가 힘든 체력 훈련을 견뎌야만 시합에서 승리할 수 있는 거와 같다고 생각하면 좋겠네. 체력 훈련이 힘들다고 포기해 버리는 선수가 어떻게 메달을 목에 걸 수 있겠는가?”

“어려워도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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