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확실한 하나 대충 열 안 부럽다(4)

by 권승호

“그렇군요.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암기하려고만 했네요…….”

“‘호(胡)’를 ‘오랑캐 호’라 했는데 중국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인단다. 호(胡)가 들어간 단어는 중국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면 좋아.”

“……”

“‘호떡’을 왜 호떡이라 하는지 모르지? 중국에서 들어온 떡이기 때문이야. ‘호도’는 중국에서 건너온 복숭아처럼 생긴 열매라는 뜻이고. ‘도’가 ‘복숭아 도(桃)’이거든. ‘술 주(酒)’를 쓴 ‘호주’는 중국 술을 가리킨단다.”

“선생님, 그러면 호주머니도 중국과 관계있나요?”

“그래. 맞아. 호주머니. 우리 선조들은 옷에 주머니를 달지 않았는데 중국인들이 옷에 주머니를 달았어. 그래서 옷에 달린 주머니를 호주머니라 이름 붙인 거란다. 중국에서 건너온 주머니라는 뜻이지.”

“선생님! 호박도 마찬가지인가요?”

영주였다.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영주의 처음 질문이었다.

“글쎄다. 선생님도 확인해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런 것 같기도 하구나. ‘박’은 ‘박’인데 중국에서 들어온 ‘박’이라는 의미일 것 같아…… 네가 확인해서 선생님에게 알려주지 않을래?”

“네. 확인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재미있네요, 선생님!”

“그렇다니까, 이제, 공부도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 인정할 수 있겠니?”

“선생님, 그래도 한자는 어려워서 싫어요.”

“한자를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알고 보면 한자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만큼 어렵지 않아. 영어나 수학보다 훨씬 쉽지.”

“아니에요, 선생님. 진짜로 한자나 한문은 어려워요.”

“너희들 중에 영어나 수학 공부에 투자한 시간의 10분의 1이라도 한자 공부에 투자해 본 사람 있니? 투자해 본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라! (사이) 없잖아? 시간 투자는 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어렵다고만 하는 것은 잘못이지. 영어나 수학 공부하는 시간의 20%, 아니 10%만 한자 공부에 투자해도 한자 실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며, 한자가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을 거야. 또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자는 공부의 기초일 뿐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도 가장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도구야. 진정으로 공부 잘하고 싶다면, 또 직장 생활 잘하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한자를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한자는 쳐다만 봐도 어지러운데…….”

“어렵지 않다니까. 만약 너희들의 생각대로 진짜로 한자가 어렵다면 옛날 사람들 어떻게 한자를 익히고 사용하였겠니? 옛날에는 초등학교만 다닌 사람도 2,000자 정도는 기본으로 알았어. 한자가 어렵지 않다는 증거잖아. 하루 1시간씩 3개월만 투자해 보고 어려운지 어렵지 않은지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아, 참, 한자를 쓰는 능력은 필요 없어. 읽을 수 있고 뜻을 아는 것으로 충분해.”

수긍하는 듯 수긍하지 못하는 듯 묘한 분위기를 깨고 현호가 입을 열었다.

“포경수술도 한자어인가요?”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젠가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먼저 꺼내기가 겸연쩍었는데 현호가 질문해 주어서 잘 되었다 싶었다. 한자를 알면 재미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사실, 한자가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미소가 얼굴과 가슴에 꽉 들어찼다.

“‘쌀 포(包)’에 ‘남근 경(莖)’이다. 남근, 그러니까 남자의 소중한 부위를 표피가 감싸고 있기에 포경(包莖)이라 하는 거야. 얼굴이 각각 다르듯 남자들의 남근도 사람에 따라 크기나 상태가 약간씩 다르다는 것 알지? 만일 그 표피가 남근을 완전히 감싸고 있다면 생활에 문제가 있기에 그 표피를 제거해줘야 한단다. 이런 수술을 포경수술이라 하는 거야. 포경제거수술(包莖除去手術)이라고 해야 옳은데, 말을 줄이기 위해서 ‘제거’를 빼고서 포경수술이라 하고 있지.”

아무도 졸지 않았다. 모두 키득거리면서 말똥말똥했다. 현호가 입을 열었다.

“모든 남자가 다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하던데요?”

“의사마다 생각이 다른가 보더구나. 남근을 표피가 완전히 감싼 상태가 아니라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의사도 있어. 그런 의사들은 우리나라 남성 중에 포경제거수술이 필요한 사람은 1%에서 2% 정도라고 하니까 보통은 안 해도 될 것 같긴 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 해도 되는 수술을 하고 있다고 하더구나. 생각해보지도 않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한다는 거야. 안 해도 되는 사교육을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제발 우리 생각 좀 하면서 살자. 아무 생각 없이 남 따라 하지 말고.”

“선생님, 그런데 왜 그것을 고래 잡는다고 하는 거예요?”

“좋았어, 그런 질문이 나와야 정상이지. 현호는 오늘 좋은 질문을 많이 하였다. 우리 현호에게 박수 한 번 보내줄까?”

의문 품는 일이 앎의 시작이고 질문이 전체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칭찬해 주었더니 현호는 겸연쩍은 미소를 머금었고, 교실의 친구들은 마음껏 웃으면서 박수를 보내주었다.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 음은 같으나 뜻은 다른 말을 가리킨단다. ‘포경’도 동음이의야. 방금 말한 ‘쌀 포(包)’ ‘남근 경(莖)’의 ‘포경’도 있지만, 고래 잡는다는 의미의 ‘사로잡을 포(捕)’ ‘고래 경(鯨)’을 쓴 ‘포경’도 있어. 동음이의어지. 음이 같다는 이유로 누군가 포경수술을 ‘고래 잡는다’라고 표현했고, 그것을 사람들이 따라서 말하고 있는 거야.”

교실에서 이렇게 귀를 쫑긋한 경우 없었고 이렇게 즐거운 표정 짓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졸고 자는 것을 아이들 탓으로 돌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선생님, 고래를 포유동물이라 하잖아요. 이것도 포경과 관계가 있나요?”

“아니다. 포유동물에서 ‘포’는 ‘먹일 포(哺)’고 ‘유’는 ‘젖 유(乳)’야. 그러니까 포유동물은 젖을 먹이는 동물이라는 의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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