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우신 것 이해합니다. 사실 저도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서른여덟 살에 깨달은 사실이니까요. 피아노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A라는 학생과 B라는 학생이 똑같은 선생님에게 하루 1시간씩 피아노를 배운다고 가정해 보지요. 물론 A 학생과 B 학생의 능력이 같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요. A 학생은 10분 배우고 50분 연습하고, B 학생은 50분 배우고 10분 연습했다고 하면, 한 달 혹은 석 달 후에 A와 B 중 누가 피아노를 잘 치게 될까요?”
“물론 B이겠지요.”
“B 맞습니다. 혹시 A라고 생각하시는 분 있으신가요?”
“…….”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금 배우는 것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 인정합니다. 배우지 않고 실력을 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시간도 많이 소비되며 비효율적이기까지 한다는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런데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배움은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충분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다음에는 익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배우기만 하는 것은, 소화되지 않았는데 계속 입에 음식을 밀어 넣는 것과 같기 때문이지요. 저는 지금 사교육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지금 대부분 고등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방과후학교의 국어 영어 수학 수업도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지금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정규 수업에서도 지나치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기 때문에 아는 것이 적습니다. 익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기에 실력이 쌓이지 않는 것이지요. 많이 배우기도 하고 많이 익히기도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지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잠도 자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친구랑 놀기도 해야 하고, 쉬기도 해야 하고, 할머니 댁도 가야 하고, 여행도 가야 하고, 그리고 책도 읽어야 하고…… 지금 대한민국 아이들은 너무 많이 배우느라 익힐 시간,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면 익힐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없기에 결국 공부를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상식과 너무 다른 이야기,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이야기에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하였다. 잠깐의 정적을 깨고 철수 어머니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남들 모두 학원 보내는데 어떻게 학원에 안 보내요? 내 아이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이 있는데…… 사실 아이가 학원에 가서 공부를 잘한다는 확신은 없어요, 불안해서 학원에 보내는 것이지요. 저도 그렇지만 다른 학부모님들도……. 그렇지 않나요?”
동의를 구하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고 상당수 학부모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제가 이렇게 여러 학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이잖아요. 실력이 향상된다는 확신도 없이 남들이 보내니까 보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다른 일도 아닌 사랑하는 자식의 장래를 결정하는 일인데……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학원에 보낸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요? 사랑하는 자녀를 공부 못하게 방해하는 부모가 어디 온전한 부모냐고요? 남이 장에 가니까 지게 지고 장에 따라가는 것하고 뭐가 다르냐고요?”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는 느낌이 와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렸다. 사과하기도 이상해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불안도 불안이지만 사실, 학원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보내는 것이지요. 집에서는 공부 안 하니까 학원에서라도 공부하라고 보내기도 하고요. 하지만 확실합니다. 학원 다니면 절대 성적 올라가지 않는다는 진실은.”
재진이 어머님이셨다.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표현은 이런 때 쓰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편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더 강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면 안 샐까요? 집에서 하지 않은 공부 학원에 가면 잘할까요? 부끄럽고 미안한 이야기입니다만 학교에서 공부 조금도 안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종일 졸거나 잠만 자는 아이들도 있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선생님이 무엇 하느냐고 말씀하시겠지만 본인이 하지 않으려 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 부모님들도 잘 아시잖아요. 자는 아이 깨워놓아도 또 자고, 조는 아이 일으켜 세워 놓아도 허공만 응시하고, 금방 가르친 것 물어보아도 대답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어요. 말을 물가에까지 데리고 갈 수는 있어도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잖아요.”
“…….”
“…….”
잠깐의 침묵이 어색했는지 아니면 정말로 답을 듣고 싶어서였는지 중호 어머님께서 입을 열었다.
“우리 아들은 기초가 부족해서요. 기초가 부족하므로 기초를 쌓을 때까지만 학원에 보내려고 하는데요, 선생님 생각은……”
“제가 부모님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방금 중호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인데요……. 기초가 중요한 것 맞고, 기초가 부족하여 공부하기 힘들고, 그렇기에 기초를 닦아야 한다는 말씀,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초 부족한 아이가 기초 닦는 그 시간에 학교의 진도는 계속 나가고 공부하는 내용은 점점 어려워진다는 사실까지 아셔야 합니다.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이 기초가 부족한 아이가 학원에서 기초 닦아올 때까지 진도 나가지 않고 기다려 준다면 학원에서 기초 닦는 일도 괜찮은 일이 될 수 있겠지만, 기다려 줄 수 없다는 것 아시잖아요. 학기 중에 기초 쌓아야 한다면서 학원에 보내면, 아이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기초가 없기에 들어보았자 어차피 모른다는 생각으로 학교 수업 시간 내내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에 조금도 관심 가지지 않아요.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는데 어떻게 성적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아들처럼 공부 못하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