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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Mar 12. 2024

전국의 교실은 취침 중

 15년 전만 해도 수업 시간에 조는 아이들은 한두 명 있어도 엎드려 자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2024년 현재 대한민국 교실에는 자는 아이들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여러 차례 다루었지만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여기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 어떤 문제보다 심각하고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도 교육부도, 학교도, 학부모도, 학생도 이 불편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와서 졸거나 자는 아이들, 눈은 뜨고 있지만 정신은 흐리멍덩한 아이들이 현재 대한민국에는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이 문제를 이야기하면 선생님의 강의가 재미가 없고 일방적 주입식 강의를 하니까 그렇지 않느냐고 합니다. 어떤 선생님 수업 시간에는 자는 아이가 많고 어떤 선생님 수업 시간에는 자는 아이가 적지 않느냐면서, 엄하게 통제하거나 수업을 재미있게 하면 아이들이 졸지 않고 공부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이 근본 원인이고 대책일까요? 물론 강의가 재미있거나 활동 중심의 수업이라면 한두 시간은 졸거나 자지 않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강의가 재미있고 활동 중심이더라도 충분한 수면 없이는 졸지 않을 수 없고 설령 졸지 않았다 하더라도 제대로 공부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졸거나 자는 가장 큰 이유는, 밤에 늦게 자기 때문입니다. 절대 수면이 부족하니 수업 시간에 졸거나 잠을 잘 수밖에 없습니다.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젯밤 몇 시에 잤는지 물으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새벽 2시, 3시 이후에 잠자리에 들었다고 대답합니다. 공부에 흥미가 없고 공부 욕심이 없어서 자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것이 현재 우리 교실의 풍경을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하려 해도 수면 부족은 공부 의욕을 떨어뜨리고 집중을 방해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이 충분한 수면입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제자가 감사 인사를 전하러 찾아왔습니다. 학생 때 최상위권 성적은 아니었던 제자였기에 대견하기도 하고 어떻게 공부했는지 비결이 궁금하여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얼마만큼 자면서 공부했느냐 했더니 하루 7~8시간 정도 잤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고시 공부하는 사람 대부분은 대개 잠을 충분히 잔다며,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공부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비단 이 제자뿐 아니라 수능 고득점자로 방송에서 인터뷰한 학생들, 학업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에게 공부 비결을 물어보면 

하나같이 학교 수업에 충실하였고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으며 무엇보다 충분하게 잠을 잤다고 대답합니다. 쏟아지는 잠을 참아 가면서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냈다고 말하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하지요. 잠 이기는  장사 없습니다. 수업 시간에 졸거나 자면 밤에 잠이 오지 않고, 밤에 잠을 자지 않았으니 낮에 또 잠이 오고… 악순환입니다. 발표 수업, 거꾸로 수업, 하부루타 수업(짝을 지어 질문, 대화, 토론, 논쟁하면서 지식을 키우는 방법) 같은 새로운 수업 방식을 도입해 보

라는 제안도 일리가 있지만, 아무리 수업 방식을 바꾼다고 해도 절대 수면량이 부족한 아이들을 어떻게 해 볼 도리는 없습니다. 

 수업 시간에 졸다가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안쓰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담임을 맡으면 가장 먼저 학부모님들께 편지를 보내서 무엇보다 밤에 잠을 충분히 잘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곤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비몽사몽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요. 비몽사몽 상태에서는 조금의 실력 향상도 불가능하니까요.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잠이 보약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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