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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힘 줄 수 있어야

by 권승호

오해할까 걱정되어 미리 밝힌다.

물건이 아니어야 한다는 사실과 졸업 후가 훨씬 좋다는 사실.

“지난번에 00 이가요,

대학에 합격했던 때보다

선생님이 고3 담임된 것 확인했을 때가 더 기뻤다고 이야기했어요.”

그 어느 날 찾아온 졸업생 제자에게 들었던 이야기인데,

지금 생각하여도 날 기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한 말이었고

동시에 책임감 느끼게 만들어주는 말이었다.

현재 해외 한국인 학교에서 파견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제자는

고 1 때와 고 3 때 내가 담임 맡은 반 아이였다.

고맙게도 내 말을 철저하게 믿어주었고

내 가르침에 감사의 마음으로 따라주었으며

믿음의 눈길로 나에게 힘이 되어 주곤 하였었다.

무슨 일을 하려다가도 하지 말라면 군소리 없이 그만두었고

하지 않으려다가도 해야 된다고 말하면 미소로 응해 주었다.

감사의 눈길 건네주면서 수시로 나에게 힘을 주곤 하였었다.

대학입시 상담 때, 모든 아이들을 정성껏 상담하였지만

그 제자에게 더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를 믿고 내 지도에 잘 따라주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의 잘못이 될 수밖에 없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합격자 발표일, 내 아들딸만큼이나 많이 긴장하였고

혹시 빨리 발표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발표 2시간 전부터 쉼 없이 마우스를 클릭 또 클릭하였다.

합격을 확인하였고 곧바로 전화번호를 눌렀는데

“00아! 합격했다.”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나오고 목이 메어서

“축하한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어야 했다.

졸업 후에도 만남은 계속되었고

임용고시 낙방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슬픔의 눈물을,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었다.


교사가 피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편애(偏愛) 임을 알기에,

교사의 편애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교단에 서는 동안 편애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동안 편애하지 않았노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교사도 부족한 인간인지라, 나를 신뢰하고 따라주는 학생에게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베풀었음을 고백해야만 할 것 같다.


국회의원을 하기도 하였던 유명 소설가는

자신의 아들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음을 넘어 무시까지 한다 하였고

서울대학교 어떤 교수 역시

자신은 아내에게도 자녀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가정에서 자신의 의견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두 사람만의 이야기 아니라 거의 모든 가정의 이야기일 것인데

이를 통해 우리는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부모 말보다 교사의 말이 훨씬 무게가 있다.

부모의 말에는 반항할지라도

선생님 말은 경청하고 실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자녀가 올바르게 성장하고 싶다면

교사에게 힘을 주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다.


선생님에게 힘을 주는 것이 현명함이다.

선생님에게 힘을 주어서, 선생님이 좀 더 많은 열정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움이다.

어떤 경우에도 열정 가지고 신나게 아이들 지도해야 옳지만,

선생님도 인간인지라 오랜 시간 아이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상처받고 학부모에게 실망하여

힘을 잃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선생님에게 힘을 주는 것은 결국 자녀를 위하는 일이다.

선생님의 교육 철학에 관심 보여주어야 하고,

선생님의 작은 말이나 행동에 감사하다 말해주어야 하며

박수 보내주어야 하고 응원 문자 보내주어야 한다.

의욕 가지신 선생님은 의욕 더 크게 키워갈 수 있을 것이고

의욕 잃은 선생님은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오롯이 아이들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였다.

아이들에게만 칭찬이 필요한 것 아니고

선생님에게도 칭찬은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 교직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상벌이 없다는 것이 그것인데,

상도 없고 벌도 없기 때문에

타성에 젖기 쉽고 열정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선생님에게 열정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은 학생과 학부모다.

가수가 청중들의 박수에 힘을 내고

운동선수가 관중들의 응원에 힘을 내는 것처럼

선생님 역시 학생 학부모의 박수와 응원에 힘낼 수 있다.

박수받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흘린 땀이 인정받게 될 때 힘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오해할까 걱정되어 다시 한번 더 밝힌다.

물건이 아니라. 편지나 문자나 전화이어야 한다는 사실

졸업 후에라야 훨씬 힘이 되고 아름답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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