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용 Apr 08. 2022

침대는 치워버리자, 이게 시몬스의 '전략'입니다

[이승용의 발로 뛰는 브랜딩] 물건 대신 '기분'을 파는 공간, 시몬스

"낚시는 물고기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물고기는 그 다음이다."


미국의 자연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낚시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다. 우리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만 낚시를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하루의 시름을 잊고 싶어서, 다른 이는 친구와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낚싯대를 잡는다. 낚시에는 물고기를 넘어선 정서적인 가치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오히려 물고기를 잡는 일에만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낚시를 여유롭게 즐기기는 힘들 것이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낚아 올리는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브랜딩의 궁극적인 목표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매출 증가다. 하지만 브랜딩의 과정 속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가치들이 있다. 낚시가 단지 물고기를 잡기 위한 행위가 아니듯 브랜딩도 즉각적인 매출 증가만을 위한 개념은 아니다. 브랜드와 소비자가 서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 자체가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주기도 한다.


▲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의 입구 모습


이런 관점에서 최근 수면 전문 브랜드 시몬스가 강남구 청담동에 오픈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은 브랜딩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엔 메인 제품인 침대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흥미로운 요소들이 가득하다.


1층 문을 열고 들어가면 유럽의 샤퀴테리 샵처럼 꾸며진 공간 곳곳에 시몬스 로고가 박힌 재치 넘치는 굿즈들이 보인다. 얼핏 보기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전시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음식 모양을 한 병뚜껑이나 볼펜 같은 제품들이다. 침대를 연상하는 굿즈는 어디에도 없다.


2층에는 부산의 유명 수제 버거 브랜드인 '버거샵'이 자리하고 있다. 부산의 로컬 푸드 컬쳐를 청담으로 가져온 셈이다. 레드 컬러가 강조된 내부 인테리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버거샵만을 즐기기 위해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꽤나 많아 보인다.


▲  샤퀴테리샵 콘셉트로 먹음직스러운 굿즈를 판매 중인 1층의 모습


3층으로 올라가면 시몬스의 2022 브랜드 캠페인 'Oddly Satisfying Video: 오들리 새티스파잉 비디오' 디지털 아트가 전시 중이다.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빠져드는 영상'이라는 뜻으로 해외 유튜브 등에서 큰 인기를 끈 형식을 차용한 광고다.

청량한 물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는 여성들, 대칭적으로 배열된 나무에서 무심하게 떨어지는 오렌지 등이 반복적으로 연출된다. 큰 의미는 없지만 볼수록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자연스레 멍을 때리다 보면 기분이 편안해진다. 이곳에도 침대는 없다.


사실 시몬스는 지난 몇 년 동안 다양한 캠페인에서 의도적으로 침대를 숨겼다. 침대 자체의 기능적 특장점을 강조하는 것보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메인 메시지를 잘 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2019년에는 해먹이나 자동차 보닛 위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시몬스 침대가 줄 수 있는 편안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얘기를 전했다.


이후에 등장한 광고도 숙면을 취하지 못해 피곤해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쌩쌩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편안한 침대가 주는 베네핏을 강조하는 식이었다. '오들리 새티스파잉 비디오' 캠페인도 이런 접근의 연장선상에 놓여져 있다. 멍 때리기에서 오는 편안함을 시몬스가 제공할 수 있는 편안함으로 재치있게 전환한다.



애초에 침대는 자주 구매 가능한 제품이 아니다. 매년마다 신제품이 나오지만 기능이나 소재 등을 드라마틱하게 혁신하는 것도 이제는 쉽지 않다. 따라서 침대에 대한 기능적인 신뢰가 소비자와 어느 정도 쌓였다면 이후엔 침대가 줄 수 있는 정서적인 가치를 극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에는 침대가 없지만 침대 브랜드가 선사하는 색다른 편안함은 존재한다. 그리고 굿즈를 사며 이곳을 재미나게 체험한 사람들이 추후에 침대를 구매하게 될 때면 아마도 시몬스를 자연스레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침대 브랜드가 수많은 굿즈를 만드는 것도, 침대와 상관없는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도, 모두 시몬스가 줄곧 머무르던 침실을 벗어나 더 다양한 곳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  샤퀴테리샵 콘셉트로 먹음직스러운 굿즈를 판매 중인 1층의 모습


시몬스의 이런 행보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들며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수면을 주제로 한 라이프 스타일을 한데 모은 복합 문화 공간 '시몬스 테라스'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찾는 소셜 공간이 되었으며 성수동에 문을 열었던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 팝업도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이들이 앞으로 보여줄 색다른 시도는 무엇일지 꽤나 궁금해진다.


브랜딩은 단순히 물건만을 파는 게 아니다. 지금 당장 매출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언젠가 그 물건을 살 때 기분 좋게 구매할 수 있게끔 만드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브랜딩은 '기분'을 파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몬스는 '편안함'이라는 기분을 전하기 위해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침대 없는 침대 캠페인을 이어나갈 것만 같다. 어떤 기분을, 어떤 느낌을 소비자에게 전할 것인가.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장점을 넘어 감성적인 가치에 눈을 돌리는 순간 새로운 브랜딩의 가능성은 시작된다.



발로 뛰는 브랜딩?

현직 카피라이터의 눈으로 요즘 뜨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탐방하며 기업들의 참신한 브랜딩 전략을 살펴봅니다. 현재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

매거진의 이전글 46년 된 아파트에 스마트폰 뒤적거리며 찾아오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