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용의 발로 뛰는 브랜딩] 전혀 새로운 식료품점 '365일장'
공간 브랜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는 F&B(Food & Beverage)다. 잘 차려진 음식은 사람들의 방문을 유도하며 체류 시간을 자연스럽게 늘리기 때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은 맛있는 먹거리가 있다면 어떤 곳이든 금강산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F&B 기반의 공간 브랜딩 전략에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그 시작은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 시장이다. 침샘을 자극하는 길거리 음식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게다가 값도 싸고 맛도 훌륭하다면 사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길가에 서서 음식을 연신 입에 넣고 나면 시장에 위치한 다른 가게에 절로 눈길이 간다. 포목점부터 생필품을 파는 잡화점까지, 이곳저곳 발길을 옮기다 보면 자연스레 지갑이 열린다. 시장은 시장한 사람들을 한데 끌어모으며 특유의 공간 생태계를 꾸려 나간다.
'광장시장'은 먹거리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서울의 대표적인 도소매 종합 시장이다. 기름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빈대떡, 계란 노른자가 더해진 빨간 육회, 보글보글 끓으며 얼큰한 맛을 뽐내는 생태탕,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떡볶이까지, 길거리를 풍성하게 만드는 값싸고도 맛난 음식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한국인에게도, 한국을 찾은 관광객에게도, 광장시장은 서울에서 한 번쯤 가봐야 하는 군침 도는 공간이다.
여기에 기존과는 색다른 메뉴를 더하는 곳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작년 10월에 문을 연 '365일장'이다. 길거리 노점상들이 가득한 먹거리 골목의 중심에 위치한 이곳은 다양한 식료품을 파는 그로서리 스토어다.
초록색 네온 사인과 노란색 타이포가 특징적인 간판은 정겨운 재래시장 사이에 난데 없이 나타난 현대적인 공간이다. 광장시장과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 외양이지만,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가고 호기심이 생긴다.
칼국수와 비빔밥 등을 파는 상인들을 뚫고 365일장 1층으로 들어서면 예상치 못한 다양한 식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벽 한 편에는 치즈나 버터와 같은 안주거리들이, 그리고 맞은 편에는 다양한 와인들이 구비되어 있다.
막걸리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재래시장 한복판에 갑자기 와인이라니. 기분 좋은 어색함이 찾아온다.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은 물론이고 평소에 접하기 힘든 내추럴 와인까지 당당하게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전통주 및 수제 맥주들이 함께 시선을 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크래프트 브루어리와 협업해 만든 '광장시장 1905' 맥주다. 목 넘김이 시원하면서도 일반적인 라거보다 더 진한 풍미를 자랑하는 골든 에일 스타일의 이 맥주는 주변의 길거리 음식들과도 뛰어난 페어링을 자랑한다. 기존 광장시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거리를 둔 이곳에서 광장시장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먹거리를 파는 셈이다.
365일장에서는 이들이 직접 제작한 다양한 굿즈들도 함께 판매한다. 광장시장이라는 타이틀 아래 스티커는 물론이고 자개를 활용한 와인 오프너, 나아가 일회용 카메라까지 선보인다. 소위 말하는 '힙한' 느낌과 광장시장이 대변하는 전통적인 요소가 작은 굿즈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1층을 나와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히든아워'라는 이름의 와인바를 만날 수 있다. 4층에 위치한 이곳은 지금껏 보지 못한 광장시장의 풍경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색다른 공간이다.
이름처럼 시장 안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와인바이자 지금껏 시장에서 누리지 못한 또 다른 시간을 와인잔에 담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해당 공간은 365일장을 운영 중인 321플랫폼에서 함께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전통시장을 새롭게 만드는 노력은 꾸준히 있어왔다. 몇 년 전, 현대카드가 리모델링을 진행한 '1913송정역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낡고 오래된 가게들의 간판을 손보고, 공간을 보다 현대적으로 매만지면서 송정역시장을 찾는 이들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그 외에도 여러 대기업들이 정부와 손을 잡고 비슷한 형식의 재래시장 활성화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365일장은 기존의 접근과는 그 노선을 달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후화된 시장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리모델링이라기보다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통시장을 또 하나의 브랜드로 만드는 리브랜딩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들이 광장시장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각종 굿즈와 맥주를 만드는 건, 굳이 시장 내부에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꾸린 건, 광장시장만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365일장은 광장시장엔 길거리 음식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광장시장을 찾는 젊은 세대에게 나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반적인 트러플오일에는 트러플 추출물이 대략 1~2% 정도 들어가 있다. 그 비율이 3%만 되어도 고급 트러플 오일이 된다. 아주 작은 일부가, 때로는 전부를 바꾼다. 365일장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가지 도전은 아직 광장시장을 뒤흔들 만큼 거대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브랜드에 새로운 물꼬를 트는 건, 오일 속 트러플 추출물처럼 아주 작은 무언가일 수도 있다.
아직은 작은 시도들처럼 보일지라도, 여기에 어떤 가능성이 숨겨져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광장시장의 365일이 궁금하다면 지금 365일장을 들러보는 건 어떨까.
발로 뛰는 브랜딩?
현직 카피라이터의 눈으로 요즘 뜨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탐방하며 기업들의 참신한 브랜딩 전략을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