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이야기 24
필리핀미생물자원센터(PNCM)의 두 과학자가 농업미생물은행(KACC)에서 2주간 연수를 받고 복귀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느낀바가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PNCM 이야기부터 해보자. PNCM (Philippine National Collection of Microorganisms)을 그대로 번역하면 필리핀국립미생물자원센터이다. 필리핀에는 44개의 미생물자원센터가 있고 그 중에서 8개의 자원센터가 필리핀미생물자원센터 연합체(PNMCC)를 구성하는데 PNCM이 그 중심(Head quarter) 역할을 한다.
PNCM은 1981년에 설립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표 미생물자원센터인 KCTC (한국생명공학연구원)가 1985년에, KACC (국립농업과학원)가 1995년에 설립된 것과 비교하면 역사가 깊다. 이미 1983년에 세계미생물자원센터연맹(WFCC)의 회원센터가 되었다.
PNCM은 필리핀대학 로스바노스(University of the Philippine Los Banos, UPLB) 내에 존재한다. 필리핀대학은 그 이름처럼 필리핀의 국립대학으로 이 나라에서는 최고의 대학이다. 17개의 캠퍼스가 있는데 지역별로 그 전공이 다르다. PNCM이 위치한 로스바노스의 필리핀대학(UPLB)은 농업, 임업, 환경과 에너지 산업 분야의 대학이다.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비교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PNCM은 UPLB 대학에 있는 7개 연구소 중의 하나인 BIOTECH (National Institute of Molecular Biology and Biotechnology, 국립 분자생물학 & 생명공학 연구소) 연구소에 속한다. BIOTECH은 농림 산업 신소재 개발을 주로 하는데, 지난 40여년간 미생물비료, 각종진단키트, 백신, 항생제 등을 개발하였다.
PNCM은 BIOTEC내의 하나의 연구실이라고 하면 될까? 13명의 정규직원이 있는 조직이니 농촌진흥청의 하나의 연구실보다는 큰 조직이다. 공간은 현재는 190 제곱미터(약 60평)로 좁으나 24,000제곱미터 건물을 짓고 있다고 한다.
장비는 미생물자원센터 운영에 필요한 것은 대부분 갖추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미생물보존에 가장 이상적인 액체질소보존 대형탱크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반면에 미생물의 신속동정으로 현재에 각광 받고 있는 장비인 수억원대의 MALDI-TOF를 보유하고 있는데 전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액체질소대형탱크(약 오천만원)의 미비는 구입 비용에 대한 부담보다는 액체질소를 상시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의 부족에 연유하지 않는가 추측된다.
PNCM은 2019년 현재 세균이 3,078 균주, 효모가 544, 곰팡이가 660, 조류(algae)가 111 해서 모두 4,393 균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액상건조법, 냉동고보존법, 광유보존법, 물보존법, 토양보존법, 계대배양법으로 보존되고 있다. 액상건조법은 독일, 일본 등 일부국가에서만 쓰는 가장 선진화된 보존법으로 아직 우리나라의 자원센터에서도 일반화되지 않은 보존법이다. 그런데 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면 최신 보존 기술을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다만 위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최고의 미생물보존법인 액체질소보존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요약하자면 PNCM은 높은 기술수준이나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PNCM의 곰팡이분야 책임자와 연구원이 KACC를 방문하였다. 40년 전통의 필리핀 최고의 미생물자원센터인 PNCM의 곰팡이 책임자가 왜 KACC에 곰팡이 자원관리를 배우러 왔을까?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의 답이 돈인 경우가 많다. PNCM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정부의 재정 지원이 없다고 한다. 때문에 PNCM은 프로젝트 바탕으로 돈을 만든다. 따라서 돈이 늘 부족하고, 돈이 부족하니 돈을 버는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생물자원을 모아서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 보다는 돈 벌이가 되는 미생물 동정서비스와 보존/분양 서비스에 관심이 많다.
열대 우림 기후에, 남북으로 1,800여 km에 펼쳐진 국토를 가진 천혜의 생물다양성을 보유한 나라에서 40년간 국가대표 미생물자원센터로 운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유균주가 4,400균주(KACC 24,000 균주 보유)인 것은 이에 기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균주 보유 숫자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최고는 아니지만 필리핀 최대의 종합 미생물자원센터이면 더 많은 자원을 보유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PNCM이 왜 정부로부터 안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을까? UPLB가 아무리 명문대학일지라도 PNCM은 UPLB라는 대학의 연구소에 속해 있다. 따라서 학교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정부부처 산하 기관에 비하여 매우 불리한 측면이 있다. PNCM이 우리의 과기부나 농림부나 산자부 같은 정부부처에 소속되어 있다면 훨씬 안정적인 재정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취약한 국가 인프라를 들 수 있겠다. 미생물의 신속동정에 필요한 MALDI-TOF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전 등의 전기 불안정으로 장비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미생물 보존에 있어 최고의 보존법인 액체질소보존법을 아직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천만원 하는 액체질소대형탱크 구입이 문제라기보다는 액체질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직 구축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PNCM의 두 과학자가 KACC를 찾은 것은 조직의 한계로 인한 안정적인 재원 확보의 미비와 부족한 국가의 인프라로 판단된다. 따라서 천혜의 자연환경과 40년이라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생물 자원확보와 안정적인 관리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없었다. 대신에 미생물의 동정, 보존, 분양 서비스를 통하여 돈을 벌어야 했다. 한편 KACC는 든든한 국가의 후원을 바탕으로 미생물을 안정적으로 수집할 수 있었고 이에 관련된 시설과 기술을 확충할 수 있었다.
수요가 공급을 만든다. 필리핀은 농업국가다. 그리고 필리핀 농업연구의 중심에 UPLP 대학이 있다. PNCM은 UPLP 대학 내에 있다.
농업은 기본적으로 식물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인데 식물과 가장 밀접한 생물이 곰팡이다. 곰팡이는 식물의 영양공급을 돕는 최대 공생 생물이자 또한 식물병의 70%를 차지하는 주요 병원균이다. 즉 필리핀의 농업발전을 위해서는 곰팡이를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UPLB는 이에 대한 연구를 하여야 하며, PNCM은 유용곰팡이 자원을 확보하여 UPLB의 연구를 뒷받침하여야 한다.
그런데 PNCM의 미생물자원보유현황을 보면 전체보유 4,393 균주 중에서 곰팡이는 660균주로 15%에 불과하다 (KACC 보유 곰팡이 12,000 균주). 농업측면에서 보면 곰팡이가 세균보다 훨씬 더 중요한데 보유량은 1/5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자면 PNCM은 지금 곰팡이 자원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강물의 양은 강 유역의 넓이와 강우량에 비례한다. 한강이 큰 것은 이 강이 경기도, 충청북도, 강원도, 심지어는 북한의 물까지 모두 모아오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17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이 3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그리고 열대 우림기후에 남북으로 1800 km가 펼쳐진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다. 결국 이 나라에는 다양한 곰팡이들이 존재하므로 수요에 능가하는 공급이 가능할 것이다.
KACC에서 연수한 두분의 과학자는 매우 훌륭한 분이었다. 먼저 두분 다 UPLB를 졸업한 인재이고 이 중 한분은 과학고를 졸업했다. 당연하겠지만 모두 영어도 잘하고 외국인과의 소통, 공감 능력도 훌륭하였다. 그리고 배움에 대한 의지도 매우 강했다. 내가 영어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강한 의지로 인하여 곰팡이 자원관리에 관한 지식 전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결국 PNCM은 농업을 배경으로 하여 곰팡이 자원에 대한 수요가 크고,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인한 곰팡이 공급이 가능하고, 또한 이를 관리할 인적자원이 갖추어졌다. 따라서 곰팡이자원센터로서의 발전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KACC의 PNCM에 대한 곰팡이 자원관리 및 분류에 관한 기술 제공과 자문은 향후 국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필리핀 미생물자원센터로부터 방문한 과학자들을 연수시키면서 국가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느낀다. 언론에서 매일 정치권의 싸움을 보도하며 이게 나라냐며 비평의 수위를 높인다. 하지만 필리핀의 미생물자원센터를 볼 때에 우리는 정말로 좋은 조건에서 미생물자원을 관리하고 있다. 그들이 예산 부족으로 돈을 벌기 위하여 동정, 보존 서비스를 해줄 때에, 우리는 대학에 예산을 주면서 쉽게 미생물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국제공동연구를 통하여 국외 자원을 확보하고, 자원관리와 분류에 관한 노하우와 기술을 축적하였다.
개발도상국만이 아니라 네덜란드 등의 선진국과 국제공동연구를 하면서도 우리의 시설, 장비, 연구비면 외국에 나가도 절대 뒤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 국제공동연구의 경우에 우리가 외국에 공동연구를 청하였을 때에 예산이 필요하지 않은 선진국의 국가연구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만족해하며 응했다.
우물안에 갇혀있다 보니 감사(感謝)보다는 불평꺼리가 먼저 보인다. 이번에 필리핀미생물자원센터 과학자를 연수시켜 보니 조금 힘이 들더라도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더 많이 만나고 교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 일도 많고 감사(感謝)할 일도 많다.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2019.1.27. 곰박>
이 글은 필자 본인의 느낌이며 필자가 속한 조직의 정책 방향과는 연관성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