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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Sep 14. 2020

삶에 대하여

"작두에 목이 잘려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진정한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리 실현을 위해 힘차게 싸워 나갑시다."
 
무서운 사진이 공개된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왜경들이 작두로 독립투사들 목을 베어내는 사진.    입학식  신입생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일장연설을 펼친 나는 참으로 호기 넘치는 선배였다. 시의 적절한 표현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런데 정말 작두로  목을 벤다?
 
말이 좋아 가볍게 벤다는 거지, 작두날이 제대로  있을  같지도 않고, 작두질하는 사람이 죽는 사람 사정 애써 봐줄 것도 아니면, 사실상 목을 부수는  아니겠는가?    기껏 사랑니  개를 한꺼번에 뽑았다고 며칠 동안 앓는 소리를 계속한 주제에 작두를 불사하겠다는  말도  되는 얘기다. 설사 내가 사랑니 뽑고  뒤의 아픔 정도는 무던히 견뎌낸 사람이라고 해도, 작두에 목을 내미는 일은 다시 한번 찬찬히 생각해 봐야 , 전혀 성격이 다른 문제다. 자유도 좋고, 정의도 좋고, 진리도 좋다. 역사도 좋고, 해방도 좋고, 지나가는 개나 소나  좋다. 하지만 세상 모든 얘기가 결국엔 모두   먹고  살자는 얘긴데, 작두 운운하며 목숨을 거론하는  차력사가 아닌 바에야 논할 바가 못된다.
 
하지만 이렇게 꼬리를 내려도 되는 것인지? 내가 비겁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가신 임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쓸데없는 생각이다. 제정신이라면 꼬리를 내리는 것이 정상이다. 요즘 목숨까지 걸어가며 어렵게 해야  일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번지점프처럼 목숨 걸기를 즐기는 경우라면 모를까? 요즘 세상에 작두질하는 왜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걸지 않는다고 해서 인생을 대충 살게 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열심히 살겠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애초에 살아있다는  문제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산다지만, 정말 행복하다고 믿으며 사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다. 문제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태어나야 하는지도 모르고 태어나서 지금껏 다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60억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의 예외 없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문제가 아닐  없다.
 
자고로 풍족한 삶을 원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든 풍족을 누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축복을 누리지 못했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 가운데 2%  되는 사람들이 국부(國富) 20%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 세계적으로 따지면, 20% 선진국 사람들이 세계 자원의 80% 자기 맘대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 필요에 비해 물자는 차고 넘치는데 아직도  먹고  입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소수의 부정한 탐욕과 폭력이 대다수 민중의 소외를 만들어냈고, 생산수단을 독점한 이들의 끊임없는 착취는 소외된 민중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해왔다. 모든 인간이  하루라도 함께 풍요를 누리며 똑같이 인간답게 살아 보자는 주장은 지극히 단순하고도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러한 주장이 제대로 받아들여진 일은 이상하게도 일찍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주장을 펼친 사람이 목숨을 부지하기나 하면 다행이었고.. 또다시 무서워진다. 결국 목숨을 걸어야 하고 죽기도 해야 하나 보다.
 
험한 세상을 어렵게 살다 보면 목숨을  걸어야  때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놓을 일이지  그래도 부담스러운 일을 먼저 떠올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극적인  중요한  아니라 삶다운 삶이 관건이라면 굳이 목숨을 운운할  없이 조화롭게    있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나누면   있다.  혼자 사는 것만 알고  그렇게 사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 문제다. 나만   생각을 하면  하나도 살지 못하지만, 같이  생각을 하면 모두가    있다. 각자  살기 위해 애를 쓰다가 여유가 생기면 나눌 생각을  것이 아니라, 우선 나눌 생각을 해야 한다. 그저 열심히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면  되는  알았는데,  와중에 도무지 나눌 줄을 모르더니 결국  모양  꼴이 되고   아닌가?
 
우리는 모두  아닌 남들과의 숱한 관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은 거의   아닌 남이 만든 것들이고,   아닌 누군가가 내게 가져다  것이다. 더욱이 몸이 아프면 의사라는 이름의 남을 만나 치료를 받고, 아는  부족하면 선생님이란 이름의 남을 만나 가르침을 얻는다. 이런 세상 속에서 내가 진정 제대로 살기를 바란다면, 나는 나를 위해 삶과 동시에 남을 위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살고 우리 모두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나누며 사는 . 잘만 나누어 살면  세상에 굶는 사람, 가난한 사람은  명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통계 수치만 제대로 들여다 보아도 누구나 쉽게 깨달아   있는, 그야말로 명백한 사실인 것을..
 
성녀로 불린 테레사 수녀를 생각해 본다. 그분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가난의 재앙을 적극적으로 '선택'했다고 하셨다. 그분은 그렇게 가난을 선택하고 가진  없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 성녀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재앙으로서의 삶이 아닌 기쁨과 보람이 넘치는 삶을 누리게 되었다. 자신만을 위해 애써  끝에 무엇이든 많이 갖게  사람은 다른 이들로부터 많은 부러움을 사기는 할지언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누며 사는 사람은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며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낸다.
 
목숨을 던질 각오까지  보았는데, 이제 제대로  생각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도 같다. 나누는 삶이 전제되지 않은 영웅적 죽음은 없으리라. 이왕 나누며  생각을  김에 박노해 시인의 글을 함께 나누면서 오랜 생각의 끝을 맺는다.
 
 지구  60 인류 모두가
나처럼 먹고 쓰고 생활한다면
 세상이 당장 좋아질 거라고 
떳떳이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
 
내가 먼저 적게 벌고 나눠 쓰면서
 해치고  죄짓는 맑아진 얼굴로
모두 나처럼만 살면 좋은 세상이 되고
푸른 지구 푸른 미래가 살아난다고
내가 먼저 변화된 삶을 살아내는 
 
 
- 1991 제대 이후 짬짬이 어설프게 대략 8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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