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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Mar 05. 2021

일어 다시 건들기

외국어 배우는 걸 좋아하지만 일어는 굳이 배울 생각이 없었다. 지금에 비해 훨씬 컸던 성장기 반일감정 탓. 혹 배운다 해도 정말 제대로 배울 생각은 없었다. 역시 반일감정에다가 아주 신기한 말투 때문에..


다들 알고 있듯이 같은 어족에 속해서 우리말과 매우 비슷한 일어. 일정한 과정을 제대로 거친 적은 없고 수없이 일본을 들락거리는 중 대충 묻어오는 만큼을 일어 실력이랍시고 챙겨 두었달까?

그런데 생각보다 일어는 어렵다. 우선 글자가 많다. 기본적으로 히라가나(ひらがな) 한 세트, 외래어 등을 표기할 때 쓰는 가타가나(カタカナ)가 또 한 세트, 그리고 때마다 다르게 읽어야 하는 무수한 한자(漢字)까지.. 게다가 우리말로 치면 ('ㅇ' 빼고) '받침'이랄 게 없어서 받침이 필요할 때마다 한 글자씩 더해서 쓰려다 보면 단어가 마구 길어질 수밖에.. (맥도날드=마쿠도나르도 マクドナルド)

외래어 표기도 그렇지만, 어지간한 단어들이 죄다 길어 힘들다.

我爱你。
I love you.
わたしはあなたをあいしています。

게다가 이 긴 단어들이 마구 활용을 한다. 체언마다 조사가 붙고 용언마다 어미가 붙어 각기 다른 문법적 기능을 한다. 다른 언어에도 비슷한 게 있기는 있지만, 우리말과 일어가 이 점에서 특히 지독한 편에 속한다.

'~하다', '~하고', '~하니', '~하여', '~하므로', '~하다가', '~하더니', '~하기는커녕', ~하려다 말고'..

대충 여기까지면 그래도 좋겠는데, 반말 따로 있고 높임말이 따로 있다. 'x2', 'x3'이 되는 것. 적당한 수준에서 기초를 닦았어도 상황에 따른 적절한 표현을 정감 어리게 혹은 예의 바르게 제대로 하려면 두 번 혹은 세 번 더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그래도 그 사이 초(중)급 회화책을 몇 차례 훑었더니 영어 잘하는 사람 찾기 힘든 일본에서 일어로 소통하며 다니는 게 어지간히는 된다는 느낌이 제법 있었는데,  한 번 작정하고 일본어 시험 공부를 해 볼까 하여 수험서를 한 권 사 펼쳐 봤더니 역시 일정한 과정을 제대로 거친 적이 없는 사람답게 너무도 큰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충분한 언어의 사용 경험 없이 건조한 규칙만 죽 훑어보는 건 영 아니다 싶어서 쉬워 보이는 이야기책을 한 권 또 샀다. 자존심은 있어서 아주 기초는 아니고.. 한자 읽는 법은 옆에 작게 쓰여 있는 걸로.. 그런데 거의 모든 단어를 찾아봐야만 하는 이 불편함! 띄어쓰기가 돼 있지 않아 각 단어의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도 힘들고.. 동사는 사전체(으뜸꼴/기본형)를 알아야 사전에서 찾을 수 있는데..

まるで宇宙の運命を握っているかのような、シリアスで深刻な表情だった。
마치 우주의 운명을 쥐고 있기나 한 듯이 '시리어스'하고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니야! 한 번 느낌 올 때 또 뭉개고 가 보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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