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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Apr 12. 2021

축구, 정체성이 답이다

“하나님, 축구가 우리 공동체에 의미하는 바를 더 잘 알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축구가 어떻게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지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매 경기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우리 팀이 마땅히 보여 줘야 할 최선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할 때 우리로 하여금 분노와 격분을 쉽게 넘어설 수 있게 도우시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선량한 선더랜드 시민들이 낙심할 때에도 반드시 도와주시옵소서. 열정으로부터 비롯된, 우리 지역사회와 우리 축구팀에 대한, 우리의 사랑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선더랜드 축구팀과 우리 선수들 모두에게 매 경기 최고의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팀의 영광이 우리 도시의 영광과 풍요가 되나니,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확신의 영을 넘치게 부어 주시옵소서. 아멘.”


축구를 다룬, 가공의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 'Sunderland 'til I Die(죽어도 선더랜드)'는 시민이자 축구팬들이 교회에서 실제로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은 스포츠에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각만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야구의 경우 부산 사람이라면 거의 당연히 롯데 자이언츠 팬이 된다. 다른 가능성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달리 말해 그럴 자유가 없기도.. 그러나 부산 사람이라고 하면 거의 당연히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의 팬이 된다? 특정 지역에서 축구가 갖고 있는 상대적으로 낮은 위상 탓일 수도 있겠지만..  


K리그 최고의 흥행카드라는 슈퍼매치의 주인공 두 팀은 과연 어떨까?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임의로 근거지를 옮긴 탓에 일종의 원죄를 늘 안고 가는 FC 서울. 그 원죄 탓에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4이 거주지 팀을 자기 팀으로 삼기 매우 꺼림칙한 상황 속에 살고.. 수원 삼성 팬 중에 앙숙이라는 서울 사람들이 매우 많기도 하고..


대한민국 프로축구의 현실을 놓고 볼 때 지역정체성이란 요소는 매우 형식적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 이름은 허울일 뿐 열성 축구팬들은 지역 정체성 아닌 다른 요인을 근거로 삼아 각기 좋아할 팀을 어렵게 고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게 문제다. 누구나 일정한 지역에 근거해 사는데 지역정체성에 기반한 쉬운 방법을 놓아두고 억지로 만들어진 다른 매력을 제공받아야 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축구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은 중계방송 시청률도 대단히 높고 관중 숫자도 매우 많다. 그러나 국가대표 경기가 이처럼 큰 성원을 받는 것은 때마다 정말 훌륭한 선수들이 나와 언제나 그야말로 매력적인 축구를 선사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면 매번 이길 가능성이 높아서? 우리는 브라질이나 독일이 아니다. 정답은 '온 국민이 이 팀의 정체성을 온전히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져도 이 경기를 끝까지 보게 되고 심지어 다음 경기도 또 볼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 답은 ‘정체성’에 있다.  


국가대항전이 아닌 경우 축구장에서 정체성이 마구 만들어지거나 공유되는 일은 생각처럼 쉽게 볼 수 없다.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다. 효창운동장에서 벌어진 어느 고등학교 축구대회 결승전에 양교 학생들이 응원을 나와 있었다. 0:1로 뒤지고 있던 팀이 막판 들어 매서운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응원 나온 그 학교 학생들이, 이를테면 친구들이 마구 야유를 보내기 시작하더라는 것. 그 학교 선생님 중 아는 후배가 있어 물어 봤더니 동점 되면 연장 가고 연장 가면 이기든 지든 집에 더 늦게 가게 되니까 그러는 거란다.


축구문화가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팬들과 축구가 참으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해 유기적인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고 있는지 여전히 의심스럽다. 혹 외형이 크고 화려해진다 한들 우리 삶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면, 뉴욕타임스가 지난 밀레니엄 최고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꼽은 인류문명의 자랑, 축구는 결코 축구답지 않은 모습일 뿐이다. 안 그래도 할 게 많은 세상에서 팬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축구는 그저 소수의 진학 또는 취업 수단으로 퇴행해갈 따름이지 않은지..


정체성에 제대로 기반하지 않은 축구 문화는 잘해야 본바닥 축구팬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거나 덧없는 내공 자랑으로만 흐를 뿐이다. 열대과일이 나지 않는 나라에 살면서 ‘나는 열대과일을 참 좋아해 매일 실컷 먹고 산다’며 때마다 허세를 부리는 사람 같은.. 반면, 스포츠가 나와 구체적인 관계를 제대로 맺을 때 그 의미와 가치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기술의 완성도나 아름다움과 같은 것은 스포츠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들어갈 때, 즉 정체성이 온전히 반영될 때 스포츠는 비로소 완전해진다.


스포츠는 없지 않아 있거나 그냥 대충 하다 마는 일이 아니다. 예배처럼 진지하고 파업처럼 치열한, 진정한  삶의 표현이며목숨 걸고 살아가는, 이 거대한 역설 속의 우리 모두가 헐떡이며 펼쳐내는, 펄떡이는 일상이요 역사, 바로 그것이다. 적어도 그 반영이다. 흥행? 성공?   번이라도  관점에 충실해 보라. 경기장에 진짜 ‘ 있는데, 이게 바로 ‘ 인데, 거기에  있지 않을 ‘ 과연 어디 있을까?


우리는 이 팀을 떠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자라났습니다. 우리 핏속에 이 팀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분이 구단주로서 이 팀에 고용된 사람들과 사용된 돈에 대해 내린 결정으로 인해 우리는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 꼴을 매주 또는 매일 감당해 내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몫입니다. ('Sunderland 'til I Die' 시리즈1 제2화 'We Can't Walk Away' 중에서..)




이 글은 전통적 의미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썼다. 오늘날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는 범세계적 축구문화와 새로운 양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정체성의 전통적 의미를 거스를 일은 없을 것이다. 정체성은 임의로 떠올리는 허상이 아니라 운명처럼 주어지는 실상이기 때문이다.



- 베스트일레븐 2021년 3월호 ‘마이스터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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