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돈 May 30. 2022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지내며

흔치 않은 중등부 회장 출신 고등부 회장이었다. 작은 교회도 아니다. 중등부 시절 중등부만 주일예배 200명 출석을 눈앞에 두기도 했다. 원래는 천하에 소문난 철부지 장난꾸러기였지만, 적어도 교회일만큼은 꼭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모습대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과 결심이 용케도 내게 있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내가 신학을 전공할 거란 예상을 하기도 했고..


지독한 성적의 부침과 기복 끝에 결국 대학에 가게 되었다. 한두 해 부진하던 고등부의 입시 결과에 결코 누를 더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매우 좋은 결과를 주시었다. 사람들은 입시 성공 비결을 물었지만, 난 그저 신앙을 이야기했다. 신앙인이라면서도 온통 세속적인 일에만 관심이 많아 보이던, 숱한 사람들은 모두 내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이런 신앙이 순식간에 바뀔 수 있을까? 실은 당연한 일. 알다시피 교회는 정말 답답하지 않은가? 사실 대학이, 또 세상이 얼마나 쿨한데.. 대학 들어가서 이전에 못 해 본 일만 어지간히 해 봐도.. 이상과 진리에 목숨을 거는 구체적 용기와 패기도 실은 대학에서나 경험하게 되곤.. 수년간 나는 무신론자로 살았다. '하나님이란 개념 없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게 훨씬 합리적이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


중년 초입의 어느 날, 어느 허름한 교회 건물에서 선교 준비 중 율동 연습이란 걸 하면서 내가 먼 길을 돌아 다시 고향에 돌아왔음을 느꼈다. 사실 그곳은 그날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  


특별한 섭리가 없이는 돌아오기 힘들다. 다행히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대부분 돌아오게 될 줄로 믿기는 하지만..  


여기서 또 청소년, 청년들을 대한다.  


아마 또 많이들 떠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나누는 이 은혜의 기억이, 너무 늦기 전, 되도록 더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 주기를.. (Many will leave though. But may the memory of grace that we share today bring as many as possible back here long before it is too late. 이건 왜 또 영어로 한 번 더 쓰나 싶다마는..)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리라.




대면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지 벌써 꽤 오래되었다. 이제 교회의 청소년이나 청년들을 대할 일은 없다. 추억은 아련하기만 하다. 교회를 통해 받은 상처를 넘어 신앙이란 틀 안에서 온전한 평안과 은혜를 누릴 때는 언제 다시 올까?



난민촌 + 다짐 +  살다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