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치 않은 중등부 회장 출신 고등부 회장이었다. 작은 교회도 아니다. 중등부 시절 중등부만 주일예배 200명 출석을 눈앞에 두기도 했다. 원래는 천하에 소문난 철부지 장난꾸러기였지만, 적어도 교회일만큼은 꼭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모습대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과 결심이 용케도 내게 있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내가 신학을 전공할 거란 예상을 하기도 했고..
지독한 성적의 부침과 기복 끝에 결국 대학에 가게 되었다. 한두 해 부진하던 고등부의 입시 결과에 결코 누를 더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매우 좋은 결과를 주시었다. 사람들은 입시 성공 비결을 물었지만, 난 그저 신앙을 이야기했다. 신앙인이라면서도 온통 세속적인 일에만 관심이 많아 보이던, 숱한 사람들은 모두 내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이런 신앙이 순식간에 바뀔 수 있을까? 실은 당연한 일. 알다시피 교회는 정말 답답하지 않은가? 사실 대학이, 또 세상이 얼마나 쿨한데.. 대학 들어가서 이전에 못 해 본 일만 어지간히 해 봐도.. 이상과 진리에 목숨을 거는 구체적 용기와 패기도 실은 대학에서나 경험하게 되곤.. 수년간 나는 무신론자로 살았다. '하나님이란 개념 없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게 훨씬 합리적이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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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초입의 어느 날, 어느 허름한 교회 건물에서 선교 준비 중 율동 연습이란 걸 하면서 내가 먼 길을 돌아 다시 고향에 돌아왔음을 느꼈다. 사실 그곳은 그날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
특별한 섭리가 없이는 돌아오기 힘들다. 다행히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대부분 돌아오게 될 줄로 믿기는 하지만..
여기서 또 청소년, 청년들을 대한다.
아마 또 많이들 떠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나누는 이 은혜의 기억이, 너무 늦기 전, 되도록 더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 주기를.. (Many will leave though. But may the memory of grace that we share today bring as many as possible back here long before it is too late. 이건 왜 또 영어로 한 번 더 쓰나 싶다마는..)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리라.
대면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지 벌써 꽤 오래되었다. 이제 교회의 청소년이나 청년들을 대할 일은 없다. 추억은 아련하기만 하다. 교회를 통해 받은 상처를 넘어 신앙이란 틀 안에서 온전한 평안과 은혜를 누릴 때는 언제 다시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