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남들보다 잘했던 전자오락 ‘푸얀’이 떠올랐다. 승강기형 바구니를 타고 오르내리며 활을 쏴 풍선을 터뜨려서 공격해 오는 늑대들을 저지하고 돼지 공동체를 지켜내던..
대입원서를 내기 직전 안암동과 신촌에서 딱 한 판씩 했던 ‘아즈텍 축구’. 결승전까지 다 깨고(!) 우승했던 동네로 결국 당당히 진학했고..
‘인베이더’, ‘루나’, ‘갤러그’.. 서울에서는 유행이 다 지났는데 강릉에서는 꼭 1년쯤 지나 한창때를 맞곤 했던.. 서울에서는 아주 형편없던 내가 강릉만 가면 오락을 아주 잘하는 아이였던 시절.
‘방구차’ 배경음악을 문득 휘파람으로 불어 본다. 손꼽히는 대형 관현악단이 이 노래와 ‘국민체조’ 반주곡 같은 걸 대곡으로 편곡해서 연주해 주면 기묘한 감동이 있지 않을까?
리그 조직해서 야구 오락 ‘스타디움 히어로’ 하던 대학방송국 아이들. 사전에 정한 일정에 따라 경기하고 경기 결과와 촌평을 방송국 공식 낙서장 ‘우덜야그(우리들의 이야기)’ 옆 ‘우덜야구’에 스포츠신문 기사 형식으로 연재하곤 했던.. 0.499, 0.482, 0.474..
고3 때 갑갑하면 어머니께 다른 핑계 대고 500원씩 받아 나가 잠깐씩 하고 들어오던.. 그런 짓을 안 했으면 혹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까?
하루 종일 오락실에 상주하며 형들에게 억지로 조언을 팔아 50원씩 받아먹던 (진짜 코를 흘리던) 코흘리개 죽돌이들은 지금 뭐 하며 살까?
아들이 밤낮없이 오랜 시간 제 방에 앉아 오락(?), 아니 게임(!)을 실컷 한다.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