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내가 힘 있는 사람이었으면 나를 그렇게 대했을까? 사정이야 어떠했든, 중요한 건 날것으로 들켜 버린 그의 마음. 좀 지나 사과를 한다 해도 이미 받은 상처는 어떻게? 나중 어느 날 문득 이 친구가 나를 아주 살갑게 대한다 한들 내가 편안히 속없이 반응할 수 있을까?
"마음 상하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마음 상한 걸 모른다는 얘기지. 그 난리를 해놓고.. 사과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고..
"더 이상 너와 같이 하지 않기로 했어."
어느 날 갑자기 자기들끼리 뜻을 모아 밑도 끝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해 온.. 몇 되지도 않는 너희들과 졸지에 헤어지게 돼서 정말 기쁘다. 제발 좀 와달라고 사정을 할 때는 언제고..
“얘 얘기는 죄다 궤변이야!”
정말?
내가 실은 그 흔한 비난의 내용보다 훨씬 더 형편없는 사람인 줄을 잘 안다. 하지만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을 또 다른 범인들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칼 같은 혀를 마구 휘둘러 대면 당해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참사만큼은 막아 줄 '예의'라는 안전장치도 있는데..
상처받고 마음이 부서지는 일이 곳곳에서 계속된다. 산산이 깨져버린 유리를 어찌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수년간 애써 지나다니지 않는 동네도 있다. 해결의 방도란 게 따로 없어서 도리어 피해자가 날이 갈수록 더 위축되기만 한다.
어차피 나도 용서받을 일이 많은데 죄인들끼리 두루 용서를 베풀며 사는 게 합당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용서를 하는 것이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시는 것은 다 알아듣겠지만, 가해자와 그 친구들이 속이야 있든 없든 하여튼 '용서하라'고 하는 데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하란 말인가? 이게 실은 2~3차 가해인데.. ('무엇이 용서인가?')
사람에 대한 기대가 가득한 때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때가 또 있다. 서두에 미처 녹여 쓰지 못한 가슴 아픈 일이 얼마나 더 많은지.. 세월 가도 좀처럼 삭일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 이 와중에 으깨져 흩어진 마음의 작은 조각들이라도 애써 꼭 쥐고 살아온 내가 언뜻 참 대견하기도 하다. 감사할 일이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3:5)
이제 겁이 나서 교회 출입이란 걸 못하지만..
“선배님은 천재시잖아요!”
마침 이런 얘기를 하는 후배를 하나님께서 보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