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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Sep 27. 2020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


중학교 1학년 남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걸 훈련하는) 교생이었다. 많은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일에 대단히 인색하듯, 예비군 훈련 나온 아저씨들이나 학교의 학생들은 교육 혹은 수업을 귀기울여 듣기에 매우 인색하기 마련이다. 한 반 60명의 학생들은 제재의 위험을 감수해가며 각기 하고픈 것을 하기 바빴고, 나를 쳐다보는 학생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한 명은 반장으로 '나까지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또 다른 한 명은 달리 할 일을 못 찾아서.. 반장은 이미 선행학습이 되어 있었기에 실은 이 수업을 들으나 마나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아직 한글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었으니 실상 이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태였고.. 결국 아무에게도 의미가 없었던 한 시간.


"잘하는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못하는 아이들을 더욱 품어 주시고 많이 돌봐 주세요."


경험 많은 교과 담임 선생님의 특별한 당부 말씀도 있었다. 순수한 청년 교생은 아마도 애초부터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상상 밖으로 힘들게 자란, 그 아이의 이름은 지금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세월이 많이 흘러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은 일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잘해 줘야겠다’던 그때의 다짐만큼 당시 제대로 해 준 게 도대체 뭐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정말 아득해지기까지.. 똑똑한 누구누구는 나중에 우리 집에 놀러 오기까지 했는데..


아이들한테 이야기한다. 자기 앞가림만 잘하는 것도 남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그래서 당당히 경쟁에 임하여 승리하고 성취하라고..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겠지만..


경쟁은 왜 할까? 경쟁은 희소성 있는 자원을 나름 공정하게 분배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인 식량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지 이미 꽤 오래되었다는데 자원이 희소하다? 이상하게도 세상에는 여전히 굶어 죽는 사람이 있고.. 꾸준히 의심해 볼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어차피 떡으로만 사는 것도 아닌데, 여하튼 하던 경쟁 공정하게(?) 계속하자? 요즘처럼 극심하게 양극화된 세상에서 공정한 경쟁?


극한 경쟁의 답은 이미 나와 있다. 2016년 1월 기사다.


‘전 세계 상위 1% 부자들이 나머지 99%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다보스포럼 발표를 앞두고 2016년 상위 1%가 99%를 합친 것보다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1년 전 전망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와중에 꾸준히 우리의 기도제목은 저 1% 안에 들게 해 달라는 것은 아닌지.. 또 그런 걸 축복이라며 마구 베푸는 게 오늘날 우리 교회는 아닌지.. 9%도 아니고 인류의 99%가 저 1%에 비하면 사실상 빈털터리인 것을.. 재산이, 물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세상은 원래 그렇고 또 그런 거라고? 전망도 하고 심지어 그 전망이 맞기까지 하는데, 똑똑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제대로 바꿔 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제 그 아이도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되고도 남음이 있는 시간. 나는 그 아이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사이 성경을 제대로 읽은 어떤 의로운 사람이 혹시 이 지극히 작은 아이를 잘 품어 주었을까? 그 아이는 이제 얼마나 번듯한 어른이 되어 있을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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