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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Jan 12. 2022

디자이너 vs 회사원

올해 주체적으로 키워 나갈 것들

마흔 전후의 기점으로 내 삶 전체를 반추하는 일이 잦아졌다.

흔히 마흔을 ‘불혹’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뜻이 ‘세상일에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는 나이’라고 하지만 해석하기 나름인 거 같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다른 무게로 흔들릴 일이 많겠지만, 본인만이 체득한 경험과 관점으로 어떻게든 헤쳐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은 마음과 막연한 기대감으로는 다가올 미래가 그저 밝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14년을 한 회사에서만 근무해 보니 이곳이 직장생활의 종착지가 될지, 종착지에 선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곤 한다.

준비 없는 은퇴는 하지 않겠다고, 인생 제2막을 준비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무엇을 심고, 어떻게 키워갈지 정하지 못한 채 그저 어제와 같은 일상을 채워가고 있다.



앞으로 사회에서 나를 얼마나 더 필요로 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것, 자의든 타의든 내가 원하는 만큼의 수명은 아닐 것이다.

40-50여 년을 더 산다고 해도 건강수명으로 보면 건강하고 활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이런 수명에 대한 시각은 삶의 우선순위를 생각하게 한다.


올해에 나는 나의 정체성 중에 크게 차지하는 ‘직장인 디자이너’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생각해본다.

그릇의 크기보다도 무엇을 담을지가 중요하고,

그릇 늘리기보다 지금껏 키워둔 그릇에 담을 것들을 생각해본다.

직장인의 끝이란 것을 의식하니 ‘직장인 디자이너’라는 정체성 안에서 무얼 키워나갈지 조금씩 보이는 듯하다.


난 어떤 디자이너 일까?
일에 대해 어떤 태도와 가치관,
목적을 가지고 있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의 능력과 스킬이
이 회사 밖에서도 유효하고 가치가 있나?

지금껏 이런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를 평가하기보다 타인들의 평가로 나를 받아들였었다.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들을 던지고 알아나간다면, 이곳에서만이 아닌 어디서든 쓰임새 있는 역량이 조금 선명해질 것 같다.

나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가능하면 어느 곳에서든 오래오래 하고 싶으니까-


올해에 새롭게 하는 일들로 밖에서도 더 가치가 있도록, 안 쓰던 근육들을 쓰며 키워나가야겠다.


다양한 배역을 빙의해야 하는 한 배우에게
힘들지 않냐는 인터뷰 질문에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는 거죠”
어쩌지 못하는 것에 체념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고 담대하게 내뱉는 그 말에, 내일의 걱정들을 밀어내 본다.
내 안에 하는 다짐 한마디뿐인데도, ‘어떡하지’하면 막막한데
“해야지”라고 뱉어 버릇하면 어차피 해야 할 일의 속도와 질을 책임지게 된다.
-1/10 라디오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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