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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Feb 05. 2022

명절의 덕담

오랜만에 부활한 ‘토술이’


명절 연휴에 친정 집으로 가서 오랜만에 원가족과의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남편들은 집에서 쉬게 해 주고 하루 더 일찍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서 아이들끼리 신나게 놀리고 어른들끼리는 정말 오랜만에 옛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대화를 이어갔다.


패밀리 토술이

18년 전, 성인이 된 이후 가족과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겸 한 달에 한번 토요일 저녁에 '토술이(토요일에 마시는 술)'라는 이름을 지어서 술잔과 함께 패밀리 타임을 가졌었다.

토술이는 아빠가 우리에게 올바른 음주 습관과 태도를 알려주고, 10대 때 너무나 엄격했던 아빠와 우리의 사이가 좁히는 것이 취지였던 거 같다.

사춘기 때 서먹한 관계, 아직 마음의 멍울이 지워지지 않아 그 자리가 처음에는 편하지는 않았는데 술의 힘을 빌려 용기를 내어 마음속의 이야기를 털어놓곤 했다.

엄마는 우리 가족 중에 유일하게 술을 입에도 못 대시는데, 토술이때는 월간 이벤트로써 맛있고 다양한 안주를 준비해주시고, 엄마도 기분 좋게 한잔씩 하며 분위기를 즐기셨다.

그때를 기점으로 음주가 즐거운 시간임을 알게 되었고 술잔 앞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생각난다.

자세한 주제와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주로 어릴 때 해외 살이 하던 때의 추억 얘기, 웃을 수 없던 과거를 꺼내며 울기도 하고, 대학생이었던 당시의 진로 고민 얘기 등 다양한 주제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1년 정도 이어가다가 각자 대학 생활에 바빠지고 여러 여건으로 오래 유지하진 못했지만, 분명 ‘토술이’는 우리 가족만이 가진 기분 좋은 추억이었다.




벌써 까마득 한 거의 18년 전,

이제는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고, 언니들과 나는 모두 결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서 술잔 앞에서 예전과 다른 농도의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마음속 어린아이

나이 마흔이 되었어도 성장기 시절의 이야기는 ‘마음속 상처받은 아이’를 깨우는 것 같아 여전히 마음이 시큰시큰하다. 이제는 헤아릴 수 있는 그때의 젊은 부모님, 그리고 우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 듬뿍 받아서 애정결핍, 콤플렉스도 없고 모든 것이 타고난 행운아는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저마다 보이지 않는 문제와 상처를 끌어안고 후천적 노력으로 극복하고, 살면서 경험한 작은 울림들을 가슴에 간직하 앞으로 나아가는 .

그 경험을 우리 아이에게 부드럽게 알려주면 된다.


부부의 신뢰

이번에 나눈 이야기 중에 부부의 ‘신뢰’ 이야기는 깊은 여운이 남는다.

우리 부모님은 나의 결혼 전, 함 들어올 때도 부부에 대해 조언과 덕담을 들려주고 그때에도 ‘부부 신뢰’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의 기록을 찾아보니 이번에 나눈 내용과 비슷한데 결혼 10년 차가 되고 보니 새롭게 와닿아서 다시 기록해본다.


첫째. 늘 서로가 서로의 성공을 뒷받침해 줄 것.
서로가 서로의 모든 방면의 성공(일, 사람, 육아, 등 어떤 것이든)을 인정하고 뒷바라지해 줄 것.

둘째. 서로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할 것.
그것이 서로의 가족이든, 일이든, 취미든, 차 한잔의 여유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주고 나도 좋아하려고 노력할 것.

셋째. 서로에게 끝까지 서로의 편이 되도록 노력할 것.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서로의 편이 되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늘 마음속에 새겨서 ‘행복의 의지’를 가지고 살 것.

+ 되도록 혼자 속앓이 하게 놔두지 않고,
언제라도 귀와 마음을 열어두는 것.
그것이 성실하고 신뢰 있는 부부 생활이다.


경험이 진한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에는 묘한 쓸쓸함과 단어 하나하나에 농도가 짙게 느껴진다.

어릴 때에는 몰랐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마음에 스미면서 투명한 깨우침을 주고 마치 인생의 교훈 같은 선물이 되는 것 같다.



상다리 부러질듯한 엄마의 명절 반찬(+내가 한 잡채^_^), 역시 친정은 사랑

그러고 보니 18년 전 토술이 자리에는 작은 언니가 일본 교환학생으로 유학 가있었고, 이번에 부활한 명절 기념 토술이에도 큰 언니가 형부의 주재원 발령으로 캐나다에 살고 있어서 가족 완전체는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어릴 때에도 두 번 해외 살이를 하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각자의 유학, 주재원이라는 다양한 면목으로 해외를 살게 되었으니 모두가 역마운이 있는 듯하다.


큰언니가 한국에 오게 되면 가족 완전체로 이런 자리를 가지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애틋한 감정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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