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다룬 것처럼 금융회사의 기본은 고객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금융투자,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이유는 새로운 금융기법, 금융공학 등을 이야기 하고 있고, 지하철 9호선과 민자고속도로, 등 다수의 좋은 성과를 낸 투자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자본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회 풍조 속에서 인간의 욕심은 그속에서 뭉게구름처럼 커져 간다. 예전에 어디선가 정주영명예회장님께 한 임원께서 카드업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 보고하였다가, 그 업종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비즈니스가 아님으로 야단을 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룹에서 증권업에 진출하기로 결정을 냈고, 그곳에 전산업무에 담당자로 나를 파견하였으니, 나는 그 속에서 누가 이야기한 것도 아니지만, 의미와 가치를 찾으며, 지나온 시절이었다. 이제는 그 몫을 두고 가지만, 그간 18년 동안의 여의도 생활은 그러했다. 어려운 업무였고, 과제였다. 많은 상처와 많은 성과를 두고 간다. 그중에 몇 개만 이야기 하고자 한다.
솔직히 이해되지 않았다. 자본주의 꽃인데, 왜 같은 업을 하는 즉 금융투자업, 같은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가 60여 개가 넘고, 그 속에서 자연 도태되지도 않고 마치 경찰이 퍼레이드 하는 행사를 가이드 라인안에서만 행진하도록 조치하는 것처럼, 혹 가이드라인을 넘어서는 행사자에게만 경고조치하는 이런 업종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하지만 지금은 이해된다. 인간이 욕심이 끝이 없는데, 자본주의 꽃이라고 하더라도 제재 없이 그대로 두었다가 국민들의 소중한 재산을 잃게 할 수는 없으니, 곁은 자본주의 꽃인데, 속은 허가를 받아야 참여할 수 있고 매우 안정적인 업이며, 같은 시장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그래도 먹고사는 이상한 시장이었다. 그래서 정주영명예회장님은 이쪽으로 고객도 돌리지 말라고 하셨나 보다. 하지만, 그 업권에서도 도전과 가치는 존재했다. 그것을 끊임없이 노력하는 기업도 있었다. 하지만, 그 업종에 선두에 서기에는 업력이 있어야 했고, 그 속에도 자본의 그림자는 아주 심해 보였다.
그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그 업종에서 원하는 인재로 커가는 것이 당연지사이고 제조업과는 다른 종자였다. 이는 나에게 충격이었고, 그 속에서 권한 없이 생존하기에는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현대캐피탈 대표이사 정태영부회장께서 진행하는 것을 박정인 부회장께서 현대자동차에서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건의하여 다시 증권업에 진출하고자 각 본부마다 한두 명씩 선발, 지원받아서 S프로젝트 TFT를 만든다. Secutrities가 보안인가? 하는 나에게 말이다. 주식도 하지 않던 사람들, 자동차 사람들을 44명이나 모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였던 것일까? 지금도 난 이해되지 않으며, 내가 지금 기획을 해도 이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고 나니 말이다. 44명 중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동차에서 있었다면 정년퇴직은 하였을 텐데,
2008년 4월 1일 현대차증권 창립일, 난 S프로젝트 TFT발령이 2007년 11월경이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자격증 따고, 공부하고 타 증권사 지점을 고객인 양 방문해서 벤치마킹하고 신났었다.
2008년 4월 21일 첫 급여를 받기 전까지는..
캐피털에서 시작한 진출이었기에 그때 발령 난 직원들과 예전 현대투자신탁에서 모셔온 분들도 같이 근무하게 되면서 급여체계가 다른 업종이니, 엉성하게 그냥 기존 급여를 수평이동하게 된 것이다. 직원이 팀장보다 더 받는 경우가 있는 이런 급여체계를 누가 인정하겠는가? 그 시절에는 현대가 기아보다 더 성과가 좋을 때라서 기아에서 오신 분들은 또 불만이었다. 시작하면서도 전문가적이고 무언가 철학적이지 못함을 느끼면서 나의 분야인 IT부분은 IBM에 아웃소싱되어 있었고, 현대차에 팔기 전에 원장이관을 하고 기업의 가치를 높여 두었던 것이다. 다만 그 원장이관이 졸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를 기업인수하는 분들이 잘 몰랐다는 것이다.
나는 IBM 아웃소싱된 부분을 계약이 종료되는 즉, 해지할 때쯤에 현대오토에버라는 현대차그룹 IT회사에 이관하는 것으로 방향과 전략을 잡고, 모든 IT 프로젝트는 현대 오토에버와 함께 하도록 방향을 잡았으나, 이는 현대카드에서 오신 CIO인 분과의 생각이 달랐으나, 내가 너무 어렸었다. 그분은 상무이셨고, IT직원은 나를 포함하여 오토에버에서 오신 한분 그리고 신흥증권사 직원 4명이 다였다. 이 조직으로 CIO의 직급과 무게가 너무 무거웠음을 난 그때는 몰랐다. 방향이 다른 것이다. 그때 팁이라도 주시지. 계속해서 직원을 새롭게 뽑으려고 하시는데, 이유를 몰랐다. 지금은 거의 80명이 넘고, 운영아웃소싱인력만 30명 되는 조직이 되었다.
리더와 같은 생각을 같은 꿈을 꾸지 못한 나는 더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게 고집을 피우다, 나는 전산을 떠나, 보안업무만 하게 된다. 이렇게 라도 배려해 준 조직에 감사하다. 보안이 정보보호관리체계, 즉 ISO와 국내 ISMS 인증을 획득한 이후, 재미난 이벤트가 있었고, 난 또 보안을 떠나 내부통제로 이동한다. 그때도 몰랐다. 왜 이렇게 책임 있게 일하게 하지 않고 일만 하게 하는지… 내부통제 부서에 오니, 또 보인다. 해야 할 일이 천지다. 이 또한 시류가 있고 그때 부서장은 새로운 일을 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또 나와는 성격이 다른 분이었다.
이렇게 지내온 18년 동안 주요한 성과만 몇 개 이야기하라면, 정보보호관리체계 구축, 즉 관리, 기술과 물리적 보안영역을 글로벌 표준과 국내 금융당국의 가이드에 맞춰 정립하였다는 것이고, 자금세탁방지 관리체계를 많은 현장의 일하시는 분들의 도움으로 회사에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새롭게 준법감시인으로 오신 분과 코드가 맞아서 준법경영시스템을 기획 도입하였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변화하고 혁신하고자 하는 것도 물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옛날이야기와 현인이 때를 기다리며 바늘 없는 낚싯대로 세월을 낚는 것처럼 살기에는 난 일이 좋았고,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청춘이었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지만, 이제 회사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그래도 운이 좋게 퇴직 후 1주일 만에 푸본현대생명 책무구조도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하는 기회를 접했다. 이는 현재 개발자들의 현황과 환경, 그리고 여러 가지를 알게 되는 시간이었고, 발주한 고객사에서 원하는 계약기간보다 더 빨리 조기에 마무리하는 성공한 프로젝트였다. 다만, 아직 현재의 개발자와 개발환경에 익숙하지 않고, 개발자의 언어로 협의함에 있어서 부족한 나를 발견하였기에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발전된 모습으로 고객사와 개발자 간의 모두에게 성공적인 PM으로 성장하고 싶다.
주님, 저에게 안정적인 직장에서 청춘의 맘으로 stay hungry와 stay humble 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소서. 이를 통하여 주님의 종으로서, 공동체와 세상에서 봉사하며 살다가 주님을 뵙게 하소서. 우리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추신 ) 배경사진은 유럽 배낭여행 시, 유럽 주재원이시던 선배가 잡아준 숙소에서 여행 중 처음으로 좋은 숙소에서 사워 후 누워 핑크마티니의 Splender in the grass를 들으며 이것이 행복이구나 행복 참 평범하다. 는 생각과 창문에서 내려오는 햇살이 너무 감사함을 느끼며 통풍으로 고생한 다리를 뻗어 찍은 사진이다.
https://youtu.be/IcOGbIBpH-I?si=J3WbAM7EH8Ng_Jk1 : splender in the grass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