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사기꾼 말고 투박한 사랑꾼
어렸을 때에는 몰랐습니다. 어렸으니까요. 그저 어른들의 잔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으니까요. 그래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렸으니까요. 그런데 어느덧 어른이 되어보니 알았습니다. 모든 것이 저에 대한 관심이자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직도 어리고 어리숙한 30대 중반 6세 아들, 4세 딸 두 아이의 아빠이자,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인 저는 결혼을 하고, 저를 닮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어떤 한 분야의 박사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며, 똑똑한 사람은 더욱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이고, 과분한 사랑을 받았으며, 그렇게 가슴 한편이 뜨거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랑꾼입니다. ‘꾼’이란 명사로 ‘어떤 일, 특히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며,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 ‘즐겨하는 사람’으로 표현되는데 ‘사랑’을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이제는 자연스레 즐겨하는 ‘사랑꾼’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도 자신 있게 ‘사랑꾼’이라고 소개할 수 있고, 실제 지인들에게도 ‘가족 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소리를 많이 들을 정도로 아주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누구나 ‘사랑꾼’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그 대상이 ‘사람’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개인이 좋아하는 취미에 대해서도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는다면 그 취미에 대한 ‘사랑꾼’인 셈이죠. 저는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가족 간 사랑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보고 자라면서 지금의 ‘사랑꾼’으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예비 사랑꾼으로서 2014년 가을, 회사 체력 시험에서 당당히 만점을 받아 면접만 남은 시점에서 ‘체력 만점자는 그냥 최종합격이지. 지금까지 최종불합격 사례를 본 적이 없다.’라고 주변에서 귀띔해 주니 그깟 면접쯤이야 편하게 보자라는 마음으로 면접 당일에 5명이 함께 들어가는 집단 면접 전에 지금의 제 성향으로는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저는 적극적으로 면접에 임하지 않을 테니 답변하실 분들은 앞에서 먼저 말씀해 주세요.”라고 이야기했다가 체력 만점자가 최초로 최종불합격 통보를 받을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면접 중 그 당시 화두였던 ‘간통제 폐지에 대해 자유롭게 찬반 토론을 진행하세요.’라는 주제에서 지금도 생생하게 면접장에서의 차가웠던 공기가 기억나며, 모두가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당시 저의 답변은 “저는 간통죄 폐지에 대해 반대합니다. 이유는 제 인생 모토가 가화만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하자마자 다들 멈칫하는 분위기였지만 말 그대로 나의 신념이자 인생 모토이기 때문에 소신 발언을 했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최종 합격 후 동기들 사이에서는 입교하자마자 ‘가화만사성’ 동기로 불렸을 정도로 ‘사랑꾼’으로서 정도(正道)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저의 사랑꾼으로서의 자질은 제 가족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는 24시간 내내 사랑꾼입니다. 회사 내 업무적으로도 지극히 사랑꾼이어야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상대방과의 ‘라포’ 형성부터 소통, 공감을 통해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진심은 통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서 형식적인 관계가 아닌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며 수년이 흐른 뒤에도 ‘가끔씩 힘들었을 때 도움을 받았던 것이 생각나서 연락을 했습니다.’라고 문득 연락을 주거나 직접 찾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마다 ‘아, 내가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 똑같은 일을 겪더라도 그때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나부터 정신 차리고 잘하자’라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물론 나름 베테랑이라고 생각하면서 열과 성을 다했음에도 돌아오는 것이 생각지 못한 배신(?)으로 속상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 또한 그 사람과 맞지 않았을 뿐, 제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기에 훌훌 털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2018년 2월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아니 2017년 저와 결혼해 주기로 인생의 큰 결심을 해준 아내에게 크게 감사하며 항상 초심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이제는 어느 정도 사랑꾼으로서 자리를 잡은 듯한 만 5년 차 신혼부부(청약홈 신혼부부 기준 7년) 생활을 하며 거의 다툰 적이 없습니다. 연애 초기에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다퉜기에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과정부터 함께 육아를 하는 현재까지 사람이 다치거나 물건이 깨지는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부부 사이가 좋습니다. 제가 밖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집에서는 수다쟁이입니다. 하루에도 아내와 대화하는 시간이 정말 많습니다. 옆에서 보면 둘 사이에 말장난을 많이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장난도 많이 하고, 가끔씩 술 한 잔도 합니다. 진짜 딱 한 잔만 합니다. 사랑꾼으로서의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도 개인 고충에 속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과 육아하는 것에 대해 초긍정적인 사람입니다. 인생 모토가 가화만사성이니까요. 그래서 회사 동료, 후배 등 예비 신랑, 예비 아빠들에게 귀가 닳도록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 그 축복을 누리려면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하는 것, 배우자를 잘 만나려면 일단 나부터 항상 관리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결국 그 길의 끝은 ‘사랑꾼’인 점, 관심 가지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일 수 있는 점 등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각자의 정도(正道)는 있기에 각자가 원하는 사랑꾼이 되는 것을 응원하겠습니다.
사실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에 공저 프로젝트에 유일한 남성 멤버로 버티고 있지만 괜히 저 하나 때문에 공통점, 공감 가는 부분이 감소되는 것 같아 민망하면서도 어쨌든 저는 아내에게 더욱 사랑꾼이 되기 위해서라도 유일한 남편으로서 공저 막내(맞나요?)로서 꿋꿋하게 버티기로 했습니다.
사기꾼 아니고 사랑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