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상이 사랑꾼으로 둔갑하는 희한한 현실
2014년 10월경 경찰공무원 채용 시험 최종 면접날 당일, 스스로도 여유로웠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필기시험과 면접 사이에 경찰공무원 체력 시험을 봤는데 5종목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상황으로 100%는 아니었지만, 소위 '경찰 체력 시험 만점자를 최종에서 떨어뜨리겠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래서 5명이 함께 입장하는 집단 면접 시작 전, 무슨 자신감으로 "면접관님의 질문에 대해 저는 무조건 마지막에 대답하겠습니다. 앞에서 먼저 답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넘치는 자신감, 자만심이 아니라 원래 어렸을 때부터 면접 즉, 말하기에 약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나름 조심스레 '좋은 답변들을 앞에서 다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도의 느낌으로 말을 한 것이다.
집단 면접 1조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입장을 했다. 다양한 사례 질문들을 받던 중, 마지막 즈음에 그때 한창 이슈였던 간통죄에 폐지 여부에 대해 5명 중 1명은 진행자, 2명은 간통죄 폐지 찬성, 2명은 간통죄 폐지 반대 입장으로 나누어 토론을 해야 했다. 마침 면접 직전에 면접 스터디에서 '간통죄 폐지 여부'에 대해 의견을 나눠봤기에 속으로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간통죄 폐지 반대 입장을 선택하고자 했다. 마침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간통죄 폐지 찬성 측 의견을 원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5명의 역할을 나누고 토론을 시작했다. 먼저 간통죄 폐지 찬성 측에서 의견을 주장하는데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간통죄 폐지 찬성 측으로 넘어갈 뻔했다. 완벽했다. 자 이제 마지막 내 차례다.
"앞서 간통죄 폐지 찬성 측 의견을 잘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간통죄 폐지 반대 입장입니다. 그 이유는 저의 인생 모토는 어렸을 때부터 '가화만사성'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먼저 집 안이 화목해야 밖에서도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간통은 결혼해서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불륜 행위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의례로 차라리 불륜이나 외도를 원한다면 깔끔하게 이혼 후에 그 상대방을 만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순간 집단 면접장의 분위기가 고요해졌다. 나는 분위기를 읽었다. 속으로 '경찰 체력 시험 만점자가 최초로 최종 불합격되는 순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걱정과는 반대로 경찰공무원 시험 최종 합격을 했지만 지금도 그 면접장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렇게 나는 3주 뒤에 중앙경찰학교(이하 '중경')에 입교를 했다. 중경에 입교하자마자 동기들 사이에서 나의 별명은 '가화만사성 경찰'로 불리었다.
그렇게 늘 가화만사성만 생각했지, '사랑꾼'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평생을 사기꾼만 되지 말자는 다짐하에 살아왔는데 이제는 사랑꾼이라니. 그런데 사실 사랑꾼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직 미숙한 결혼 8년 차이지만 결혼 생활을 해보니 내 입장에서가 아닌 아내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기, 무슨 일이 있을 때 숨기지 않고 아내와 소통하기, 늘 함께 대화하기, 가족은 하나! 동행하기, 선보고 후조치 등 기본적인(?) 것들만 지켜주면 결혼 생활에 문제가 없고, 사랑꾼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실 가정 내에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했을 뿐인데 '사랑꾼'이미지로 비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직장 내 회식 때 미안한 마음에 간식 사가기, 급하게 일정 조율을 해야 할 때 아내에게 바로 전화해서 가족 일정부터 확인 후 약속 잡기, 가급적 혼자 하는 취미보다는 다 같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하기 등 정말 기본적인 것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사만 잘해도 중간은 간다.'라는 말처럼 기본적인 것들만 해도 사랑꾼이 되는 현실이다.
우리는 늘 어렸을 때부터 이론에서는 빠삭하다. 사기꾼과 사랑꾼의 차이는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차이는 순간이고, 한 끗 차이지만 그러한 말과 행동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출발할 때에는 동일선상이었을지라도 점차 그 간격은 마주하지 못할 정도로 멀어지는 것이다.
영화 '킹스맨'에서 나온 명대사 중, "MANNERS. MAKETH. MAN."(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대사를 좋아하는데 혼인을 한 부부 사이를 포함하여 인간관계에 있어 'Manners'(예의범절, 몸가짐)은 늘 신경을 쓰고, 신중하게 행동을 해야 한다. 지인과의 가벼운 약속도 아니고,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서로 간 혼인서약을 하고, 법적으로 혼인신고까지 해놓고 간통이라니, 상대방과의 불륜, 외도라니. 가당치 않다.
중경에 입교 후 동기들에게 '가화만사성 경찰'로 불렸을 때 나는 내심 뿌듯하기까지 했다. 무슨 간통죄 폐지 여부에 대한 토론에서 '가화만사성'이라는 카드를 꺼냈는지라며 의아해할 수 있으나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가화만사성'을 외칠 것이다. 그때의 아찔한 면접이 사랑꾼으로서의 첫 포석이지 싶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MANNERS. MAKETH.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