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5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을 준비하는 날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진실과 마주하는 날이 되었다. 38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진짜 달리기를 시작한 날이었으니까. 시작은 단순했다. 회사 내부망에서 본 '1보의 기적' 프로그램. 1킬로미터를 뛸 때마다 순직경찰관 자녀들에게 100원씩 기부하는 소박한 캠페인이었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저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뭔가 달랐다. 아스팔트 위에 발이 닿는 그 순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워졌고, 머리는 맑아졌다.
정확히 5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달리기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주도권'이었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달리는 이 시간만큼은 오롯이 내가 주인공이 된다. 회사에서는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고, 집에서는 가족의 필요에 응답하고, 사회에서는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지만, 달릴 때만은 온전히 나 자신이다. 발걸음의 리듬을 정하는 것도 나, 호흡의 템포를 조절하는 것도 나, 멈출지 계속할지 결정하는 것도 나다. 이 단순한 사실이 때로는 눈물겨울 정도로 소중하다. 언제부터인가 내 인생의 운전대를 다른 누군가가 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달리기는 그 운전대를 다시 내 손에 쥐어주었다.
흥미롭게도, 달리기를 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들이 자주 떠오른다. 사무실에서 몇 시간을 끙끙대며 고민해도 나오지 않던 해답이, 30분 달리기 후에 갑자기 명료해지곤 한다. 아마도 몸이 움직일 때 뇌도 함께 활성화되는 것 같다. 혹은 일상의 잡념에서 벗어나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달리면서 떠올린 아이디어들을 집에 와서 메모해보면, 의외로 쓸 만한 것들이 많다. 업무 관련 해결책부터 작은 일상의 개선 방안까지. 달리기가 단순히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도 기르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정말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문구는 달리는 순간 스마트폰 메모장에 즉시 기입한다.
다행히 지금까지 큰 부상 없이 달리고 있다. 처음에는 욕심을 부리다가 다칠까 봐 걱정했는데,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거리를 늘려가니 몸이 자연스럽게 적응해주고 있다. 어쩌면 이것도 인생의 은유가 아닐까.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만의 페이스로 나아가는 것. 매일 달리지는 않는다. 몸이 쉬고 싶어할 때는 쉰다. 날씨가 너무 나쁠 때도 무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달리기가 가능한 날에는 조금씩이라도 뛰려고 노력한다. 5킬로미터든, 3킬로미터든, 심지어 1킬로미터라도.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이라는 걸 배웠다.
1킬로미터당 100원씩 기부하는 일도 생각보다 의미가 크다. 달리기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인데, 그것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된다니. 내가 건강해지는 과정이 동시에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달리기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5개월 동안 누적된 거리를 계산해보면, 생각보다 꽤 많은 금액이 기부되었을 것이다. 그 기부금액으로 누군가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따뜻해졌다면, 내 발걸음은 단순히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돌이켜보니, 정말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체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예전에는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났는데,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롭다. 달리기를 통해 인내력과 끈기를 기르고,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성숙해진 것 같다.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38세에 시작한 달리기가 이렇게까지 삶을 바꿀 수 있다니. 나이는 핑계가 아니라는 것,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달릴 것이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오늘도 한 걸음씩 내딛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달리다가 달라진 나는, 이제 달리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