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상실의 매너리즘
원망의 칼은 거꾸로 쥔 칼날이고,
변명의 아궁이는 꽉 막힌 굴뚝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 주PD -
이 글은 특정업체나 개인을 비난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그리고 게임 산업은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산업으로 '생태계'라는 표현을 쓴다. 이런 게임산업 생태계의 '젠가'가 한번 더 무너지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젠가'를 쌓아 올리고 새 게임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모멘텀이라고 부른다. 많은 게임업체들이 이러한 모멘텀에 사라지거나 변화하였고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이번 '젠가'게임은 모멘텀이라기보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사자성어가 더 잘 어울리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현실이 다가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뭘까?
콘텐츠 생산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수익
나는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콘텐츠 생산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며 이런 환경을 개선하고자 많은 담론들이 있었고 문화체육관광부 등 많은 정부기관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지금의 유통구조에서는 너무나 미약한 변화일 뿐이다.
어찌 보면 음악, 영화에 비하면 게임이나 웹툰은 나은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음악이나 영화의 경우 기존 유통구조가 변경되는 모멘텀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그동안 이익을 독점해온 카르텔이 깨지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반면 게임이나 웹툰은 아직 형성된 지 얼마 안 된 산업구조로 플랫폼 변화나 새로운 BM의 발견 등 많은 변수가 있어 독점 카르텔의 형성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게임 쪽은 수익구조에 'IP홀더'까지 가세하면서 게임 개발사에게 돌아가는 수익배분율은 더 낮아지는 상황이다.
퍼블리싱 사업과 온라인 성과형 광고사업이 성장하는 동안 콘텐츠 생산자들은 자신의 몫을 제대로 챙겨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 누군가를 원망할 필요도 누군가는 변명할 의미도 없다. 시장은 상호관계에 의해서 여기까지 흘러왔다. 하지만 최근 언론에서 그런 결과를 '中 게임의 역습'이나 '중국 외자 판호' 그리고 '주 52시간 근무' 등으로 마녀사냥을 하는 행태를 보면 한숨만 나오는 수준이다.
이제 이런 구시대의 유통구조를 혁신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 기회가 올 것이다. 그중 가시적이고 혁신적인 플랫폼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희망한다. 하지만 미래를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조금은 모멘텀의 시작과 결과를 유추해 볼 수 있다.
2000년 초반 대한민국은 게임 퍼블리싱의 전성기였다. PC 온라인은 물론이고 모바일 게임도 피처폰의 디바이스의 한계에서도 참신하고 다양한 게임들이 사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PC 온라인의 경우 폭발적으로 성장한 PC방 인프라로 동반성장을 하게 되었고, 초고속 인터넷망의 구축은 게이머들이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 한게임, 넷마블, 넥슨, 피망 등 많은 퍼블리셔들이 그들만의 독자적인 포털을 통해 게이머들을 관리했고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대박은 아니어도 중박은 보장되던 시절이었다.
피처폰 시절 모바일 게임의 경우는 이통사의 추천 메뉴에 들면 대박, 그렇지 않으면 중박이 대부분이고 쪽박은 게임의 완성도가 정말 좋지 않을 경우가 아니면 없었다. 그마저도 이통사에서 품질관리를 해서 다 걸러내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동통신사(이하 이통사)의 CP(Contents Provider : 콘텐츠 제공자) 계약을 하려면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이 많았다. 그래서 소규모 개발사들은 이통사와 CP 계약을 한 사업자들과 퍼블리싱 계약을 맺었다. 당시 퍼블리셔와 개발사의 수익배분은 5:5가 보편적이었다. 그리고 퍼블리셔와 이통사간의 관계에 의해 추천 게임에 올라가느냐 마느냐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이통사와 CP 간 수익배분은 1:9였고 추천 게임에 등록될 경우 2:8 정도로 조정되던 시절이었다. 요즘 수익배분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지만 이 당시 이런 배분율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통사가 게임을 다운로드할 때 발생하는 패킷 요금(1 패킷=512바이트, 텍스트 6.5원, 멀티미디어 2.5원)은 온전하게 이통사에서 챙겼기 때문이다. 당시 이통사의 수익률은 어마어마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수익률을 바탕으로 이통사, CP, 개발사는 모두 윈윈 할 수 있었고 좀 더 독창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콘셉트를 찾는 것이 중요한 시장이었다. 컴투스, 게임빌, 픽토소프트, 4:33의 전신이었던 펀터 등 많은 개발사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 게임의 다양성은 상업성을 뛰어넘어 근본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인디 이념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했다. 이런 다양성은 게임 개발자들, 특히 게임 디자이너(게임기획자)들에게 황금기와 같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게임 개발은 다양성이라는 DNA를 품고 있었다.
2010년 당시 업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본격적인 전환을 1.5~2년으로 내다봤었다. 당시 내가 피처폰 게임을 개발하고 있던 굉장히 과도기적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업적으로 위기를 직감했고 퍼블리셔와 많은 논의들을 했었다. 당시 소셜미디어 기반의 PC SNG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고 2010년 페이스북이 국내 진출함으로써 본격적인 SNG의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모바일 SNG를 만들고 싶어 의견들을 피력했지만 퍼블리셔는 결국 피처폰 기반의 타이쿤 게임 제작으로 못을 박아버렸다. 결국 스마트폰의 보급은 1년이 안되어 38.3%, 2012년에는 67.6%가 전환을 하게 되었다. 사실 2011년 대부분의 과금력을 가진 모바일 게이머는 오픈마켓으로 넘어갔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2011년 4월 갤럭시 S2의 보급과 11월 아이폰4S의 보급은 피처폰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안드로이드 마켓(현 구글플레이)과 앱스토어가 가져올 게임 개발과 서비스 환경의 변화는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모멘텀을 만들었다. 이 시기에 나는 퍼블리셔의 한계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게 된 중요한 시점이었다. 물론 이후에 개인 사업을 정리하고 존경하는 앱스트리 대표님과 같이 국내 최초로 모바일 SNG를 티스토어에 서비스를 하게 되었지만 당시 모바일 오픈마켓으로 전환되는 시기는 게임업계 모두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변화였고 PC 게임 시장과 모바일 게임 시장 모두의 모멘텀이 시작된 시기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들이 이 모멘텀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대부분 자본력을 가지고 있던 PC 온라인게임 기반의 포털을 가진 대기업들은 중국시장 진출이나 스마트폰 초기 모바일 게임 퍼블리싱 인프라를 구축했던 업체들이 살아남았다. 이 시기 가장 혁신적으로 모멘텀을 극복한 업체는 방준혁 의장의 CJ E&M(현 넷마블) 일 것이다. 2000년 방준혁 의장이 설립한 넷마블은 게임 퍼블리싱의 신기원을 만들어낸 게임 포털이었다. 그가 PC 게임포털 넷마블을 통해 습득한 사업 경험은 퍼블리싱이라는 BM에 최적화되어있었고 당시에는 혁신적인 BM이었다. 당시 방준혁 의장의 행보는 마치 위기의 애플을 다시 살린 스티브 잡스와 비슷했다. 시장의 파도를 정말 잘 넘어간 혁신적인 사업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준혁 의장의 행보는 게임 개발환경이나 처우를 개선하는 것에서는 실패하게 되었다. 개발 스튜디오 인하우스를 통하여 개발사와 퍼블리셔 간의 필요충분조건이 변화하게 되었고 이런 퍼블리셔의 장악력은 방준혁 의장의 스타일로 운영되었다. 이는 결국 퍼블리셔들의 롤모델로 인용되며 잘못된 방식으로 개발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을 '퍼블리셔의 오만'의 시작점이라고 말한다.
2011년 ~ 2013년은 스마트폰 모멘텀으로 PC 퍼블리싱 사업이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이때 이상한 행보를 보인 두 회사가 있었다. NC와 웹젠이 이 시기에 PC 퍼블리싱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 두 회사의 당시 사업적 판단은 대기업들의 리스크 관리를 위한 선회력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무감각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행보였다. 이는 몰락해가는 PC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장기적인 실적 부진을 퍼블리싱 사업을 통한 단기성과로 당장을 넘겨 보겠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성과를 내지 못하고 회사의 경영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이후 두 회사는 자신들이 보유한 게임 IP로 기사회생을 맞이 하지만 모두 자신들이 직접 이룩한 사업성과라 보기는 힘들다.
피처폰 개발사들은 체질개선을 통해 오픈마켓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대부분의 업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개인적으로 피처폰 개발사들의 몰락의 가장 큰 이유는 퍼블리셔와의 종속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결과라고 보고 있다. 당시 오픈마켓의 등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서비스 조건은 글로벌 원빌드 서비스였다. 이전까지 게임산업과 비교했을 때 이것 만큼 파격적인 변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환경에서 실무자들이 외쳤던 생존전략이 실행되기까지 쉽지 않은 선택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컴투스, 게임빌을 포함한 대부분의 피처폰 업체들은 국내 서비스에 집중하게 되었고 2014년 글로벌 서비스한 서머너즈워가 아니었다면 이 두 업체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퍼블리셔의 오만'으로 퍼블리셔 종속관계가 더욱 단단하게 묶여버려 결국 '국내 서비스에 매몰'되고 '다양성 상실의 매너리즘'을 증폭시키게 되는 시기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이후 개발사와 퍼블리셔의 껄끄러운 동거가 시작되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퍼블리셔의 요구조건을 수용해가며 게임을 몇 년씩 폴리싱 하거나 갑질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개발환경을 더욱더 악화시키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한 때 퍼블리싱으로 성과를 냈던 '퍼블리셔들의 오만'이 지금의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면역력을 상실하게 된 개발 환경을 만들고 생태적 병목현상을 만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개발 환경의 남은 면역력마저 읽어버리게 되는 죽음의 골드 러시가 있었다. 바로 카카오 게임하기의 등장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 #2를 통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