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 윤리에서의 "윤리"가 아닌, 인생의 지표로서의 윤리
나에게 "윤리" 라는 단어가 인지되기 시작한 시점은, 중-고등학교 시절 부터였다.
당시 나에게 "윤리"는 수능 및 내신을 위한 교과목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에게 "윤리"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보다는 중요도가 떨어졌다. 교과목의 Frame 에 갖혀버렸던 것이다.
당시, 윤리 시간에 배웠던 것은, "5지선 다 정답 맞추는 법" 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두려운 것은, 당시 학창 시절 윤리를 위와 같이 배우는 데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본래 윤리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에 대해 자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결과적으로 "스스로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옳음과 그름"을 판별하는 분별력을 함양하는 과정이다. 효율 & 효과성, 좋음 & 싫음의 관점이 아닌, 옳고 그름의 Frame 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전 국민이 행복에 가까워 질 수 있는 방향으로 의사결정 하도록 지원하는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학창시절, 나에게 윤리는, 쾌락주의와 금욕주의의 차이가 무엇인지, 공리주의 창시자가 누구인지 암기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중-고등학교 때에는 "윤리" 수업을 일주일에 2~3시간 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었지만, 대학교 때에는 그런 의무조차 없었다. 학점 잘 주는 수업, 취업에 도움이 되는 수업, 널럴한 수업의 Frame 에 갖혀, 윤리 과목은 학생들이 그닥 찾지 않는 인기없는 교양강좌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지성인이라는 집단이 탄생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주요 요직을 차지하며, 국가/기업/ 조직에 대한 중요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많은 부와 명예를 획득해왔다.
그런데, 요즘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보면, 애석하게 지성인들이 참 많다. 명문대를 나오고, 그 어렵다던 고시를 패스하고,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에서 승승장구 해오신 분들이 참 많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발언,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윤리 차원을 넘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분들.. 아마 윤리 시험은 모두 100점 받으셨던 분들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윤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일까? 도덕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일까? 심지어 상식으로도 이해가 안되는 것일까?
잠시 다른 방향을 화두를 돌리면... 사람들은 MBA 중 스탠포드 출신들을 유독 괴짜라 부른다. Career Path 관련 특이한(?) 의사결정을 유독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MBA 졸업 후, 높은 연봉을 주는 기라성같은 회사들 (사모펀드, 투자은행, 컨설팅 등등) 보다는, 창업, NGO, 중소기업 등 커리어 적 관점에서 봤을 때 화려하지 않은 곳들로 몰리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 등은 Stanford 에 캠퍼스 리크루팅 자체를 오지 않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문도 많았다 (리크루팅 행사를 개최해봤자, 1) 많이 참석하지도 않고, 2) 몇 명 와도 지원하지도 않고...). 그래서 그들을 가르켜 "괴짜"라 칭한다.
그런데, 이 곳에서 2년 생활하며 느낀 것은, 이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다. "출세와 돈"이 아닌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세상이 더 좋은 곳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옳은 일에 헌신하고 기여하는 것이 이 친구들을 관통하는 관점이었다. 그리고 학교는, 이 친구들이, 금전적으로 큰 손해 없이도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었다.
Anyway, 왜 이 친구들은 이런 관점을 가지게 되었을까? 우선 입학 Essay 자체가 이런 친구들을 선발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보통의 학교가 "Future career" 를 물어보는데 반해, 스탠포드는 "What matters most to you and why?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커리어를 물어보는 것이 아닌, 이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을 물어보는 것이고, 이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인 친구들 사이에서는, "Do the right things" 라는 기조 하에,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논하여 2년을 보낸다. 그리고, 대다수 수업에서, 윤리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벤처투자론 수업에서도, 창업 수업에서도, 회계 수업에서도... "Do the right things" 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아젠다였다. 그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관점에서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지금은 세상에 엄청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는 선배 창업가들과 수업을 공동 진행 함으로써, "do the right things" 는 경제적 이익을 희생해야만 하는 가치가 아닌, 성장과 함께 갈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그렇게 졸업한 친구들은, 저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다양한 길을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do the right things 에 대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하루하루 임한다는 사실이다. 사모펀드를 가도, 투자은행을 가도, 정부에 가도, 창업을 해도, 모두 옳음을 위해 인생을 헌신한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들이 사회적 성공 보다도, "옳음을 구현하는 삶"을 우선시하며 살아가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다만, 과거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잘했던 선배들은, "옳고 그름" 보다는 "빈곤탈출, 입신양명" 에 가치를 두고 인생을 사셨던 분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세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옳음 구현 보다는 커리어적 성공을 중요시 생각하며, 매 순간 의사결정을 해 나가고 있다. 때론, "옳고 그름"이 팀 업무 효율 및 분위기를 저해하는 개념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Client 와 회식이 있는데, 법적으로 옳지 못한 곳에서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슈를 제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색한 적막이 흐를 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윤리가 무너진 현 시대를 보고 있다. 시민의식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지성인이 되고 기득권이 되었을 때 보여주는 폐해를 여과없이 보고 있다.
더 끔찍한 것은, 나 역시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유학을 가기 전에는 옳고 그름에 대해.. 실천은 커녕 생각하지도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나에겐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 빠르게 승진하는 것, 좋은 학교에 가는 것, 권력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아젠다였지, "옳은 인생을 사는 것"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삶을 사는 것"은 그냥 가끔 싸이에 끄적거리는 거짓 감성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윤리의식, 시민정신에 대한 교육이 체계적으로 선행되었으면 좋겠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윤리 교과목이 수능/내신의 관점이 아닌, 정말 옳고 그름을 생각할 수 있는 힘, 모든 인간을 숭고하게 생각하며 사람답게 사고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기존 관졈에 대해 끊임없이 why?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인생관이 정립되는 교육이 선행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하버드에서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같은 강의가 가장 지명도가 높은 것처럼, 국내 대학에서도 "정의와 윤리"를 내세운 수업들이, 많은 학생들이 찾고 영감을 받아가는 수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단 학생들 뿐 아니라, 기성세대 역시, 학생의 마음으로 시민의식과 윤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교육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스탠포드에서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2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장인정신을 가지고 수업을 준비하는 것처럼, 국내 대학 교수님들 그리고 교육 종사자 분들도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에 임해주셨으면 좋겠다.
우선, 나 역시 미약하게나마, 나 스스로도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훈련을 하고, 교재와 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동시에, 조금한 회사지만, Ringle 이 정직한 서비스를 출시하고, 상식에 의거하여 운영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Ringle 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행복과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100만이 운집하는 촛불집회는 전 국민에게 "윤리가 바로 선 사회"의 중요성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하는 각성의 장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Justice 를 중심 축으로 올바로 사고하는 법"이 구체적 교육의 콘텐츠로 진화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브런치를 먹을까 하다, 브런치에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보며 쓴 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