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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Hoon Lee Jun 13. 2024

모두가 잘하는 것이 하나 씩 있는 사회 (독일 교육)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운좋게 독일의 마인츠라는 도시에 10개월 체류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영어로 진행되는 외국인 학교가 아닌 독일어로 진행되는 동네 local 초등학교에 다녔었는데, 그 때 경험들이 지금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frame을 만들어 주었다.


당시 독일 초등학교는 4년제였다. 신기했던것은 1~4학년을 같은 담임 선생님이 지도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1~4학년 같은 구성으로 쭉 갔다. 4년을 같은 친구들/선생님 밑에서 지도받는 구조였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만 그랬을지도)


그리고 당시, 한 반에 약 15~20명 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다녔던 한국의 초등학교는 당시 한 반에 40~50명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한국 초등학교는 1) 오와 열이 맞게 책상이 배치되어 있었고, 2) 선생님을 바라보는 구조였고, 3) 학생들마다 번호가 있었었는데, 당시 독일 초등학교는 1) 학생들이 선생님 뿐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기 쉬운 자리 배치였고 (전형적인 MBA 수업 구조인데, 자리배치가 더 자유롭게 된...?), 2) 번호는 없었다.


감사했던 것은, 독일어를 전혀 못하는 나를 위해, 독일어 수업에는 나를 1:1로 Care 하는 선생님이 붙어서 옆 교실에서 따로 가르쳐 주셨다. 1:1 맞춤 수업이 붙은 것이다. 어떤 과목에 뒤쳐지는 아이가 있으면 선생님이 붙어서 1:1 Care 해주는 구조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친구들마다 잘 하는 것이 하나 씩 있었고, 교실에서 '다양성'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산수를 잘하는 아이, 말을 잘하는 친구, 노래를 잘하는 아이, 글을 잘쓰는 친구, 축구를 잘하는 친구, 달리기가 빠른 친구 등등. 잘하는 것들이 하나 씩 있었는데, 그래서 누가 공부를 제일 잘하지? 등의 기준은 없었다. 하나의 기준으로 순위매김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당시 나는 '독일어는 못하는데, 산수는 잘하는 아이. 말은 못하는데 글씨는 예쁘게 쓰는 친구. (애들이 정말 신기해했다. 너는 말은 잘 못하는데 글씨는 잘 쓰는구나) 차붐의 고향 한국에서 온 아이' 였을 뿐이다.


그리고, 반에 약간 특이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한국으로 치면 약간의 지적 장애가 있는..) 그 친구도 큰 문제 없이 반에서 어울리며 수업을 들었다. 가끔 신기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갑자기 큰 소리로 말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선생님이 '너무 큰 소리로 이야기 하면 안돼' 하고 엄하게 타이르기도 했지만), 그는 그저 찬찬이라는 친구였을 뿐이었다. '우리와는 다르다' '특이하다' 는 perception 은 거의 없었고, 그저 한 명의 친구였을 뿐이다. 장애가 있고 없고의 관점이 아닌, 사람 중 한 명으로 인지되는 것은 환경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학교 끝나면 공원에서 만나 뛰어 놀고, 축구하고 그랬다. 가끔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다들 비슷한 크기 집에 살았는데 분위기는 저마다 달라 신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교인 김나지움과 기술직 등을 준비하는 직업 학교 레알슐레로 나위어지는 구조였는데, '김나지움에 꼭 가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학부모님들이 다 같이 모이는 기회도 종종 있었는데 (시 낭송회, 음식 나눠먹기 행사 등등), '내 아이는 무엇을 좋아해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 같다' 정도 이야기/고민이 오갔지, '좋은 학원은 어디인지?' 등 정보 교환은 거의 없었던 기억이 있다. 교실에 존재했던 '다양성'이라는 것이, 사실 부모님들의 마음에도 자리잡고 있었고, 독일이라는 사회 구조에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내 초등학교 기억의 90%는 독일에서의 1년 기억이 지배한다.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받고, 중간/기말 무조건 잘 봐야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지냈던 한국에서의 기억과 달리, 평가받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내가 본연의 나로 인지된다는 느낌을 처음 받아봤으며, 친구들이 별명 또는 '몇 등'의 숫자가 아닌, 이름 하나 하나로 기억에 남던 (독일어를 잘하는 레오, 친절했던 수지, 달리기를 잘했던 캐서린 등) 소중했던 기억들이다. 그래서 대학교 입학도 사람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바라보는 '사회복지학과'로 선택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중간에 과를 바꾸긴 했지만)


독일에서의 기억을 생각해보면, 다양성의 본질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각자 잘하는 것이 하나 씩 있고, 그 잘하는 것이 나름의 인정을 받는, 그래서 한 명 한 명의 사람으로 인지되는 것이 다양성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누군가 '아이 교육 어떻게 시키고 싶냐?' 물어보면 '기회와 환경이 허락된다면, 초등학교 만큼은 독일에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다'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듯하다. 자아 정체성이 생기기 전부터 성과에 대한 압박을 느끼는 것이 크게 가치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런 교육을 뚫고 성장을 했는데, 과거 내가 받았던 한국의 초-중-고 교육을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만큼은 '조금 느려도 괜찮아. 네 생각을 들어보고, 재밌어 하는 것 & 그래서 잘하는 것을 찾아보자. 그런데 지금 당장 좋아하는 것이 없어도 괜찮아. 천천히 찾아가면 돼. 넌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지금까지 성장해온 것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가치있는 아이야'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 하에서 아이가 성장했으면 좋좋겠다. 그게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일 사회도 단점은 있다. 허무함에 빠져드는 젊은 세대들도 있다. (더 높게 인정받고 싶은데, 너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인정받는 분위기일 수도 있기 때문에) 다만, 선생님만 바라봤고, 필기하는 데에 바빴으며, 1등~50등이 존재했고, 컨셉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암기하기에 바빴던 나의 초-중-고 시절 속에, 독일에서의 단 1년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가장 튼튼한 토대였던 시간이었던 것을 보면, 독일은 나에게 세상을 더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교육시켜 준 고마운 사회였다.


지금도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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