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컨설턴트 시절, 4명의 부문장급(사장급) 임원이 관여된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었다 (정말 별들의 전쟁이었다)
당시 Main contact 이었던 임원분은 상대적으로 나머지 분들 대비 '부서의 힘'이 쎄지는 않았었다. (끝발 날리던 조직 또는 실권자와 독대하는 조직은 아니었다)
하루는 임원들이 모여 conference call 을 하는 미팅이 있었다. 그런데, 기세 좋기로 유명했던 임원 한 분이, 본인의 실수를 우리의 main contact 임원분 탓을 하며 '결국 당신 책임'을 시전하고 있었다. 듣는 내가 다 화가 날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의 임원 분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허허 웃으면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실수에요. 저희가 보완해서 다시 보고를 사장님께 올리겠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미팅이 종료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임원분과 개인적으로 대화나눌 기회가 있었어서, 당시 왜 그러셨는지? 여쭤봤다.
'저...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네 물어보세요'
'그 때 임원님 실수가 아니었는데, 왜 받아들이시고 떠안으셨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승훈님도 나중에는 임원이 될테니.. 솔직하게 말씀드려 볼께요. 큰 기업에서 임원 생활 하다보니.. 결국 전투는 2가지 유형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1. 정말 중요한 전투, 2. 중요하지 않은 전투. 그리고, A. 내가 이길 수 있는 전투, B. 내가 이길 수 없는 전투가 있음을 시행착오를 통해 느낄수 있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전투에서는, 가. 싸움을 시작했으면 무조건 이겨야 하고요, 나. 이길 수 없으면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지는 순간 조직이 큰 피해를 보니까요. 중요하지 않은 전투일 경우에는, 사실 조금 손해 보고.. 져도 됩니다. 그런 전투에 힘 뺄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 번 conference call 에서 논의된 이슈는, 사실 중요하지 않은 건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내가 고친 후 보고할께' 한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모든 전투에서 이기려들면 결국 큰 싸움에게 지게 되어있어요. 내 편이 안생기거든요. 그리고 불필요한 전투력 낭비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하고 같이 일 안하려고 하죠.
승훈님도 나중에 임원이 되거나, 리더가 되면... 1) 모든 논쟁에서 굳이 다 이기려들지 마세요. 때로는 전략적으로 져 주세요. 2) 정말 중요한 전투의 경우, 이길 수 없으면 피하세요. 피하는 법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3) 정말 중요한 전장에서 싸움을 시작했으면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안그러면 내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요. 확실한 내 편이 있으면, 그리고 초집중하면, 그리고 '지면 난 끝이다'라는 각오로 임하면 이길 수 있어요. 이기는 법을 꼭 배우시고, 이길 수 있는 network 을 꼭 구축하세요'
'바쁘실텐데, 상세히 설명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때 그 대화는 나에게 너무 큰 가르침을 주었고, Ringle 창업 후 10년이 지난 오늘도 그 때 말씀해 주신 부분을 명심하며 정말 다양하고 많은 미팅에 임하고 있다.
모든 전투에서 이기려들면 안된다. 전략적 패배도 당할 줄 알아야 한다.
피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싸움에서는 결국 이겨내는 역량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을 지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시 뒤집어씌웠던(?) 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떠났고(떠남을 당했고), 나에게 큰 가르침을 준 분은 아직 회사에 남아있으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