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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sh Mar 11. 2017

많은 감성과 공감능력

회사생활에 별로 도움되지 않는 두가지

학생 시절, 남들은 공부할 때 더 많은 감성근육을 기르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누구보다 학문, 지식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누구 못지않게, 때로는 남들보다 더 감성이 풍부했고 공감 능력이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내 학창시절의 유일한 자랑거리라고나 할까.


하지만 덕분에 감정에 기복이 생기고 무언가에 빠졌을 때 깊이 몰입되어 잘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대로 좋았다. 그게 내 힘 같았다.


남들은 느끼기 힘든 지점을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내 힘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힘으로 발휘되는 경우도 있었다.


주변에 맘 깊은 사람이 생긴다던지,

어떤 문제해결을 위한 아이디에이션 등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의 의미를 어린 나이에 이미 알고 있었고, '몰입'을 통해 문제해결을 위한 본질에 빠르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일상적인 회사생활이 거듭될 수록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상적 회사생활을 해야하는 지금 나에게 너무 많은 공감과 감성은 회사생활을 일상적이지 못하게 만든다.



•감성적으로 무던한 사람이 회사생활에 유리하다


누구나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고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상황에 대한 대처는 감성적으로 무딘 사람이 쉽게 해쳐나오고 금새 잊어버린다.


반면 '감성의 골'이 깊은 사람은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힘든 싸움을 겪으며, 대부분의 무던한 감성의 사람들로 부터 유별나다는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다.


또,

내 눈에는 감성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트랜드에 민감해 보이는데, 이 것 역시 일상적인 회사생활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때로 업무에 연결시켜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대게는 현실과 이상의 과리만 느끼게 해줄 뿐. 아무리 그 감성을 어필하고 싶어도 알아볼 수 있는 주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행하다.



•너무 많은 공감능력은 본인의 이익을 반감한다


상대방 감정에 대한 배려, 이해는 나 자신의 금전적 손해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취해야하는 시점에는 상대방을 물리치고 본인이 올라서야 하는데, 이때 너무 많은 공감능력은 결단을 내리는 데 방해만 될 뿐. 이런 배려는 본인의 실제 손해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한국적 상황에서 일상적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면 상급자로 갈 수록/가려면 요구받는 것들 중에 '무감정적 상명하복'이 있을텐데, 안타깝게도 타인에 대한 감정적 배려는 본인을 낙오자로 만들 뿐이다.




만일 당신이 나와 달리 많은 공감과 감성을 요구받는 일을 하고 있다면 행운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회사원'은 되지 말라던 어느 형의 조언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회사원'에 둘러쌓여 사는 지금이 불행하게만 느껴지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싶어

카페에 앉아 내 감성을 담아 글을 쓰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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