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ducati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hwan Connor Jeon Jan 02. 2023

서울, 중국, 그리고 미국 - 21

봄과 함께 찾아온 봄, J

사고가 나기 전 J는 행사에서 두 번 정도 만난 적이 있었다. 어려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그는 영어에 능통했고 한국어도 곧잘 하는 듯이 보였다. 모임에서 그는 활기차고 주도적이며 긍정적인 사람인 듯 보였다. J는 1년간 연변에 있을 계획이었고 바로 그 해가 나의 초청교사 발령 첫 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J와 나는 중국에 이틀 차이로 입국을 했었다. 


그 이후 J를 다시 만난 것은 병실에서였다. J는 굳이 나를 개인적으로 알기 때문에 왔다기보다는 처총회에서 병문안을 갈 지원자를 받아서 순서를 정했기 때문에 온 것이었다. 나는 J가 왜 병문안을 지원했는지 모른다. 만약 J가 지원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다시 만났을 일도, 결혼을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처음 계획한 대로 5년 또는 그 이상을 중국에서 지냈을 것이다. 지금처럼 미국에서 교사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02년 5월 11일. 그날에 중국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도, J가 내 병실에 온 것도 마치 오래전에 정해진 운명처럼 우리를 마주하게 만들었다.


사고 후 2주일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사고로 인한 척추 부상 통증 때문에 제대로 앉아 있지 못했는데 척추 브레이스를 사용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좀 더 늘어났다. 현재의 아내인 J가 병문안을 다시 왔다. 병실은 아무래도 칙칙한 기분이 들어서 J와 함께 병실을 밖으로 나갔다. 입원 후 처음으로 병원 문 밖으로 나가는 셈이었다. 허리의 통증이 여전했지만 허리의 브레이스를 하고 J와 함께 벤치에 마주 앉았다. 5월 말의 연변은 새싹들로 풋풋했고 싱그러웠다. J도 그러했다. 봄이다. 


당시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까마득히 잊을 만큼 나는 J와의 대화에 푹 빠져 들었다. J는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이민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와 그의 가족들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 역시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했고, 한 시간의 만남은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지났다. J는 다음 주에 다시 올 것을 약속했다. J는 자신의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병문안을 계속 오게 된 이유를 나중에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해준 이야기가 마치 한국의 연속극처럼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게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를 생각하며 다음 약속을 계획한 것도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된 셈이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계속 J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 말이다. 


세 번째 만남에서 J는 7월에 있는 봉사활동을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치료도 끝나지 않았고 허리 부상으로 브레이스를 끼고 앉아 있어야 하는 나에게 기차로 36시간이나 걸리는 장소에 가서 봉사를 하라니. 이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하는지 어리둥절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 중국, 그리고 미국 - 2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