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에 브레이스 두르고 기차에서 36시간
2002년 당시 연변한국국제학교에서 초청교사로 4학년을 맡고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교실을 한 달 넘게 비운 동안 아이들은 그새 많이 자란 느낌이었다. 얼굴에 난 상처를 가리기 위해 기르기 시작한 수염 때문이었는지 오랜만에 만난 어색한 느낌 때문이었는지 새 학년을 시작하는 개학날과 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내 학생들은 나를 둘러싸고 재잘대며 정신없이 질문과 자신들의 근황을 쏟아냈다. 학생들에 둘러 싸여 있으니 에너지가 차 오른다. 있어야 할 자리에 돌아온 느낌.
당시 근무했던 국제학교는 한국의 학교들보다 방학을 2주 정도 빨리 했었기 때문에 사고 뒤 교실로 돌아와서 2주도 채 되지 않아 여름방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의사는 방학 동안 가능한 집에 머무르면서 물리치료에 집중하기를 권했지만 J가 제안한 여름방학 봉사활동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기차로 36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이동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도 했고 봉사활동 기간 동안 물리치료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3주간 봉사활동을 간다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중국의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 자체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지만 J와 함께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다.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앞으로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더 선명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봉사활동 준비를 했다.
허리의 통증 때문에 허리에 두르고 있어야 하는 브레이스를 끼고 36시간이 걸리는 장소까지 이동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