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교실
미국에서 처음 시작한 일은 SDC (Special Day Class)에서의 보조교사였다. 학습적으로, 정서적으로, 또는 행동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이 SDC로 보내어진다. 내게 주어진 일은 SDC 반의 담임인 M을 하루에 3시간 돕는 것이었다. 출근 첫날 교실에 들어선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교실 속에는 학생들이 10여 명 정도 있었고 이 학생들은 교실에서 돌아다니고, 소리 지르고, 심지어는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교실 안에 3명의 어른이 있었지만 교실 속의 어른들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중 힘이 센 아이들은 특별히 제멋대로 행동했고 다른 아이들은 담임의 말보다 이 학생들의 말을 더 잘 따르는 듯 보였다. 그중 가장 폭력적인 두 학생은 걸핏하면 교실에서 싸우기 일쑤였다. 담임을 맡고 있었던 M은 무력해 보였고 나와 같은 보조교사를 하고 있었던 C는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2023년 현재까지 25년 가까이 교직에 있으면서 내가 보았던 교실들 중에 가장 혼란스러웠던 그곳이 미국에서의 내 첫 번째 직장이었던 셈이다.
담임인 M은 나에게 3학년 학생들의 수학을 담당해 달라고 했다. 교재를 살펴보았다. 이제껏 제대로 가르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수학 교과서와 학습지는 케비넷에 아무렇게나 나 뒹굴고 있었다. 그대로는 수업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것부터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학습지를 진도에 맞추어 정리하고 매일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분량대로 진도에 맞추어 정리를 해 나갔다. 이틀 만에 정리를 끝냈다. 3일째 되는 날 M이 부탁한 대로 3학년 학생 3명을 불러 모아 소그룹으로 지도를 해 보았다. 소그룹을 하는 동안 교실의 다른 쪽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교실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큰 소리로 문제를 일으키는 통에 제대로 진행을 할 수가 없었다. 데리고 있던 3명의 학생들도 내 말에 집중을 할리가 만무했다. 통제불능의 이 교실에서 보조교사인 나 혼자 잘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미국에서의 내 첫 번째 직장이었던 이 교실은 내게 큰 상처와 두려움을 주었다. 매일 3시간, 혼돈의 교실에 들어가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은 이전에 겪어 보지 못했던 우울증을 가져다주었다. 약국에서 우울증 약을 사서 집의 책상 위에 두었다. 나 스스로 극복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결국 그 약병의 뚜껑을 열진 않았지만 당시의 상황은 그만큼 심각했다.
혼란 속의 그 교실에서 두 달 정도 일을 한 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교장에게 면담 신청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