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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hwan Connor Jeon Oct 16. 2020

화씨 100도는 섭씨 37.8도

너무 뜨겁지만 기다려지는, 하지만 염려되는 가을의 문턱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상상이나 했을까. 10월 중순의 낮 기온 37.8도. 하지만 10년 넘게 이곳에 살아온 터라 이 정도 기온은 나에게  더 이상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어차피 교실과 집, 차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터라 바깥의 온도는 나에게 논외의 주제가 된 지 오래이기도 하고.


변변한 말 상대 친구도 없이 사는 나에게 뒷마당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것은 내가 가진 거의 유일한 취미다. LA까지 출근을 할 때는 이 취미마저도 주말에 잠시 짬을 내어하는 정도였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뒷마당의 상당 부분을 텃밭으로 바꾸어 올여름엔 더 많은 시간을 뒷마당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때문에 화씨 100도가 넘는 온도가 얼마나 뜨거운지, 그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뜨거운 햇볕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많은 이들에게 새삼스럽지만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올해는 깻잎과 오이가 작황이 좋다. 마르지 않는 기름병과 같이 따도 따도 계속 나오는 이들은 식탁에서 내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마다 반가운 인사 주고받는 소중한 말 상대. 달팽이가 와서 새로 난 싹들을 먹어치우기라도 하면 그날 하루는 영 힘이 나지 않는다. 약간 추웠던 지난주와는 달리 이번 주는 한낮의 온도가 100도까지 올라가면서 뒷마당의 식물들도 더 튼튼하게 자라는 느낌이다.


뒷마당 일을 하면서 등 뒤로 내리쬐는 뜨거운 볕이 편하지는 않지만 언제 봤다고 이미 오래전부터 알아 왔던 친구 같은 식물들이 반기는 것을 알기에 감사하며 감내한다.


뒷마당의 말동무들은 여름 끝자락의 뜨거운 볕이 더없이 필요하겠지만 올여름, 이미 많은 것을 태워버리는데 일조한 폭염은 이 가을 인디언 서머로 더욱 기승을 부리며 이제껏 주었던 피해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코로나, 폭염, 산불, 온라인 교육, 말동무, 그리고 화씨 100도.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지만 모두를 묶어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을의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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