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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Oct 07. 2018

추억의 지도

서울 선언을 읽고

며칠 전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서울 선언>의 표지를 보고 물었다. “서울 선언? 제목 특이하다. 이 책은 무슨 책이야?” “음...그러게...무슨 책이라고 해야하나...” 당시 이미 절반 넘은 분량을 읽었음에도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기행문? 답사문? 역사서? 여행기? 에세이? 무엇도 이 책을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서울 선언>은 지금껏 누구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던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역사와, 추억과 변화를 되짚는 책이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쓰여진 이 책을 읽다보면, 흔히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멋없는 고층 건물과 아파트 숲으로 가득찬 볼 것 없는 곳으로 평가받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참으로 낯설게 느껴진다. 30년 가까이 살았음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며 알려고 하지조차 않았다는 것도 실감하게 된다. 친정 동네에 절이 있다는 것도 책을 보고 처음 알았을 정도이니 말 그대로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이다.

서울 곳곳에 대해 새로이 알게된 점도 재미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도시가 같은 대접을 받지는 않는다. 어떤 곳은 볼 것이 많고, 어떤 곳은 별 볼 일 없고, 어떤 곳은 흥미롭고, 어떤 곳은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시간의 흐름과 그 변화를 투영하여 생각한다면 그 어떤 지루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곳이라도 흥미로운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문학이 누군가를 바라볼 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단순하게 구분짓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끔 이끌어주듯이, 이 책은 도시와 공간의 변화와 흐름, 인과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역사’가 그러하듯이. 화려하거나 오래된 문화재만이 유산이고 유적이 아닌 것이다.

최근에 아들이 몇 차례인가 반복해서 전에 살던 그 집이 더 좋다고 다시 이전 집으로 이사 가면 안되냐고 졸라서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여러가지 면에서 지금 집이 더 좋은데 왜 그러는 것일까. 왜냐고 물어보면 전 집이 더 좋다고만 이야기하니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글쓴이가 어린 시절에 대해 “저는 잠실 주공 1단지와는 달리, 4단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아름다운 기억만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첫 친구들과의 이별, 집안의 부도, 그리고 안양 평촌으로의 도피성 이사 같은 기억들 때문입니다.” 와 같이 회고하는 대목을 읽으니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든 장소는 역사의 증거인 동시에 곧 추억이기도 하다. 내가 책을 읽으며 서울의 구석구석에 얽힌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겼듯이 아들은 아마 이전 집에 얽힌 애틋한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나가놀던 놀이터와 자전거를 타고 수퍼까지 가던 길과 매주 수요일마다 장이 열리면 핫도그를 사다 먹던 기억. 그렇게 부모님과 오손도손 셋이만 지내다가 새로운 집에서는 이사를 나오기 얼마 전 태어난 동생까지 넷이 줄곧 함께한 기억이니 이전집을 자꾸 그리워하는 것 아닐까. 6살짜리 아들 역시 동생을 괴롭히거나 미워하지는 않더라도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못할만큼 아직 어리고 연약한 아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다 읽고 난 지금 누군가 이 책이 어떤 책이냐고 다시금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역사와 추억에 관한 책이라고. 그 배경이 서울이라 서울에 살아보았거나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가겠으나,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과 견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울만한 책이라고.

“세상은 선과 악, 빛과 어둠, 흑과 백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흑과 백 사이의 회색 지대 어딘가를 살아갑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시람들이 회색 지대에 남아 있을 때, 목숨을 걸고 빛을 향해 나아간 사람들이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저는 진보 진영에서 <생계형 친일>을 한 사람들까지도 모두 친일파로 밀어붙이는 데에도 반대하고, 보수 진영에서 <당시에는 살기 위해서 전부 친일했다>라고 말하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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