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보는 남자를 읽고
김경욱의 거울 보는 남자를 읽었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 앞에 어느날 남편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나타나고, 아내는 자신도 모르게 그 남자의 뒤를 따라나선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면서 남자에 얽힌 비밀이 서서히 풀리게 되는데...
최근에 꽤 주목해서 보고 있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에서 나온 책인데다가, 책 뒷표지에 적힌 “19금 대신 30금을 붙여야 할 것만 같은 어른의 사랑소설”이란 문구에 이끌려 일부러 빌려 온 것이었는데, 줄거리는 흥미롭지만 읽는 내내 짜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여러모로 아주 ‘나쁜’ 한국소설이다. 나쁘다는 말이 공정하지 않다면, 좀 더 정확하게는 내 취향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있는 유형의 이야기이다.
실은 한국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다. 어릴 적에는 열심히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들, 허공에 떠도는 언어들, 허세와 거품만 가득한 온갖 수사에 재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좋아하는 작가들을 발견해서 다시 읽게 된 참이고.
예를 들면 나는 이런 류의 대화를 하는 사람이 현실에 존재할 거라고 믿기 어렵다.
“미용사로 가장한 셜록 홈스시군요.”
“사람들 만나면 구두부터 봐요. 구두를 보면 어떤 타입인지 대충 감이 오죠. 까만 스웨이드 힐은 몽상가의 신발이에요. 겉으로는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죠. 진짜 삶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언젠가 눈앞에 펼쳐질 거라 믿으며.”
보통은 이렇게 말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말이다.
“미용사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셜록홈스야 뭐야.”
“사람들 만나면 보통 구두부터 봐요. 구두 보면 취향이 보이거든요. 이 계절에 까만 스웨이드 힐 신은 사람들 있잖아요? 자기가 힙스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아니 물론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있겠지만, 그리고 문체는 작가 고유의 영역이라 이런 태클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아무리 소설이고 아무리 문학이라지만 몽상가의 신발이 어쩌고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고?
“오페라의 유령. 팬텀이 뮤직 오브 더 나이트를 부르는 장면이 압권이죠. 크리스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여전히 가면을 벗을 수 없는 팬텀. 흉측한 얼굴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끌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크리스틴. 전주만으로도 심장이 방망이질하면서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요. 쓰러지듯 팬텀의 품에 안기는 크리스틴처럼.”
“다른 뮤지컬도 그렇지만 그건 꼭 오리지널을 봐야 해요. 브로드웨이 버전으로. 저녁은 이탈리아에서 시칠리아풍 가정식으로 즐긴 다음 이스트강을 따라 맨해튼의 야경을 눈에 담으면 완벽하죠.”
이런 말투로 말하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면 나는 그만 정말 너무 화가 나고 말 것이다. 물론 화가 난다고 어쩌지는 못하고 그냥 조용히 슥 피해다니고 말겠지만.
비유며 수사며 묘사며 캐릭터며 대화며 단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데도 끝까지 읽은 이유는....카톡에 빨간 숫자가 떠 있거나 메세지 함에 숫자가 켜지면 안 읽고는 못배기는 증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보던 것은 끝까지 마저 봐야만 하는 몹쓸 병에 걸려서. 빨리 치유해야지 원.
이 책을 읽고나니 왠지 모를 한마디가 자꾸 입에서 맴도는데...
“뉴욕 해럴드 트리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