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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Jan 13. 2019

지겹기 그지없는 ‘금기에의 도전’

<첫 사랑 마지막 의식>을 읽고

고전을 제외하고 오늘날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들의 초기작은 어지간하면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나 그게 좋아하게 된 작가라면. 이언 매큐언의 소설 몇 편을 읽고 흥미가 생겨 초기 단편집인 <첫 사랑 마지막 의식>을 읽었다가 크게 실망했다.

20대 중반에 대학원 다니던 시절에 썼던 작품들을 모은 책인데, 어쩌다가 그런 이야기들을 쓰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서문에 직접 밝힌다. 당시에 힘든 일도 없었고, 욕구불만도 없었으며, 친구들과도 잘 지냈는데 어쩌다 그런 어두운 세계가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어쩌면 금기에 도전하는 그 자체가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금기에 도전이라니 뭘까 하며 읽어나갔는데, 과연 평단에서는 좋은 평을 들었지만 대중적으로는 인기를 못 끌었다는 설명이 충분히 납득이 갔다. 일단 엄청나게 재미가 없다. 몇십년간 저술활동을 계속하여 위트 있고 술술 넘어가는 문장에 재미있는 입담까지 갖춘 오늘날의 이언 매큐언과 비교해서는 안되겠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너무 재미가 없었다. 물론 ‘문학성’이나 ‘아름다운 문장’등에 있어서는 과연 뛰어났지만, 그의 작품들이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비했다는 평을 듣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지루해서 간신히 꾸역꾸역 읽어내야만 했다.

그러나 재미가 없다는 사실보다 더 거슬렸던 것은, 그 ‘금기에의 도전’이라는 것이, 성기를 포르말린에 보관하는 남성이라든가, 자기 아내가 너무 싫어서 없애버리는 모습이라든가, 근친상간, 미성년인 여동생을 강간하는 사춘기 오빠, 어린 소녀를 강간한 뒤 살해하는 남성, 이모에게 성적으로 학대 당하는 어린 소년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데에 있었다.

물론 소설이 쓰여졌던 시대적 배경은 충분히 감안한다. 몇십년 뒤 오늘날의 기준으로 평가를 하고자 함도 아니며 문학 속 내용에 일일이 윤리적 기준을 들이대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궁금한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 남성 작가의 소설들에서는 이 ‘금기’라는 것이 죄다 성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나느냐 하는 점이다.

오래전에 페친이었던 사람 중 툭하면 댓글에 뜬금없는 섹드립을 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때 역시 도대체 뭘 보고 어떤 생활을 하며 자랐길래 다 자란 성인이 수시로 섹드립을 치는가 이해할 수 없었다. 섹스라는 단어만 나오거나 조금이라도 성적인 뉘앙스가 나오는 대목에서 웃겨 뒤집어지거나 흥분하는 그(해당 인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들을 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고추! 고추! 똥! 똥! 하며 깔깔 웃어대는 우리집 5살짜리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었다.

할아버지의 유품 인 포르말린에 보존한 성기를 애지중지하는 남성을 그린 이언 매큐언의 단편을 보며 도대체 고추가 뭐길래 응? 그게 뭐라고 응? 하는 생각을 새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여성 작가들의 초기작이 ‘자기 파괴적’인 본능에 시달리는 모습을 주로 그려낸다면, 남성 작가들의 작품은 타인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또한 이번 이언 매큐언의 초기작을 보며 다시 한 번 느낀 부분이다. 물론 여성 작가들의 작품도 징징댄다느니, 지나친 자아 탐구가 지루하다느니, 청승맞다느니 하는 비판을 듣기 일쑤지만, 그나마 그건 본인 스스로를 괴롭히는 선에서 그치고 말지, 남성 작가들의 작품 안에서처럼 타인을 성적으로 또는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형태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이언 매큐언 개인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의 작품들이 여성혐오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문학이 얼마나 현실과 밀접해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만큼 현실 세계에서 남성과 여성의 행동양식에 차이가 있고, 남성의 경우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거친 방식으로 구현되었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그런 작품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여전히 그런 작품들이 많이 출간되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역으로 현실을 더욱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고.

하여간 그 놈의 성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 물론 문화적인 영향이지 그들 개개인의 잘못이겠느냐만은 - 그렇게 네 고추가 중하고 귀하면 평생 네꺼 네가 물빨핥 하면서 살아라....라고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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