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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Jan 17. 2019

‘한결같음’의 슬픔

<천사의 사슬>을 읽고

중학생 때 여자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모여 에이치오티 오빠들의 이야기를 할 동안 남자아이들은 다른 일로 바빴다. 그들에게는 중대한 일과가 있었다. 그들은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뒷편의 책걸상을 앞으로 쭉 밀어서 널찍한 공간을 만든 후 거기에서 춤 연습을 했다. 때마침 영턱스 클럽의 한 멤버가  중요한 기준을 세워주기도 했다. 나이키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할 수 있다고? 그럼 토마스와 윈드밀은?

노는 아이들은 노는 아이들이라 춤을 연습했고, 감각이 좋은 아이들은 춤을 출 수 있다는 이유로 그들과 가까워지다가 어느 순간 일원으로 합류했다. 브레이크 댄스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중요한 인정 수단이었다. 그렇게 학기 내내 연습한 춤은 쉬는 시간마다 공작새의 날개처럼 과시의 도구로 역할하다가 수련회의 장기 자랑 시간에 선보여졌다.

중학생 남자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키가 쑥쑥 컸다. 방학 사이에 20센티가 자라 돌아온 아이도 있었다. 1학년과 2학년, 2학년과 3학년은 누가 봐도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고작해야 한두살 차이지만 3학년들은 마치 대학생과 같은 거리감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어른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3학년의 ‘노는 오빠들’이 모여서 춤을 추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중 벽에 비스듬히 기대 있는 한 명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듯한 심드렁한 표정. 튀지 않지만 눈에 꼭 들어오고 마는 정확한 존재감. 그는 소설이나 만화 속에 나오던 세상에 불만을 품었지만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 조용하고 차분한 소년 같았다. 불량학생들에게 왠지 모르게 호감을 사면서도 막상 일탈행동에는 동참하지 않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면서 친구들에게는 사랑 받고 학교에서는 유명한 그런 소년. 당시는 꽃보다 남자가 탄생하기 전이었으나 말하자면 루이 같은 그런 캐릭터였던 것이다.

나는 첫눈에 그가 좋아졌다. 그렇다고 막 진지하게 짝사랑의 열병을 앓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남들이 에치오티와 젝스키스를 좋아할 때 현실에 있는 한 학년 위의 선배를 흠모했던 것 뿐이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으면 멀찍이서 지켜보고, 학교에서 돌아다니다 혹시라도 마주치면 속으로 기뻐했다. 축구할 때 그는 자주 골을 넣었다. 듣기로는 공부도 곧잘 했다고 한다. 어느날부터인가 그도 날 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3학년이 졸업하던 날이었던가, 졸업식 전 마지막 등교일이었던가.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평소 좋아하던 선배에게 단추를 달라고 쫓아가는 아이들도 있었고, 남자친구와 헤어진다고 우는 애들이 있었던 것은 생각난다. 물론 대부분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남이사 졸업을 하든 말든. 집으로 가는 길에 운동장에서 밀가루를 뿌리고 난리 법석을 떠는 한 무더기의 3학년들, 허연 가루들 사이에서 반사적으로 그의 모습을 더듬어 찾으며 교문을 나섰다.

당시 우리 중학교 옆에는 이른바 ‘군인 아파트’라고 불리는 작은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직업군인들이 거주하는 군 전용 아파트였는데 그래서인지 학교에 군인 자녀들이 많이 다녔었다. 집으로 가려면  그 군인 아파트 단지 내부를 가로질러야 했다. 그날 따라 같이 다니는 친구 없이 혼자였고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네이버 지도로는 고작 1키로 남짓한 거리지만 15살 중학생에게는 지루하고 긴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여간 고개를 땅에 쳐박고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 너 이름 승혜 맞지?”

알고보니 그 선배의 집 또한 군인아파트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가 노는 아이들과 놀면서도 크게 일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군인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어디선가 그의 아버지가 무척 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성적이 떨어지면 맞고, 춤을 춘다고 설쳐대면 맞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 맞고.

하여간에 그날은 분명 시기상으로 추운 겨울, 나뭇가지는 앙상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그런 날씨였음에 틀림없는데도, 기억 속에는 왠지 녹음이 푸르른, 조금 덥다 싶은 바람이 불었던 그런 날씨로 남아있다. 바람이 불고 등에 땀이 나서 교복 안 쪽이 조금 젖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반짝거렸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대학교 졸업반 무렵이었던 것 같다. 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졸업반이었는지, 신입사원 때였는지. 이태원 거리를 걷는데 누가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요즘은 사라졌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태원에는 늘 ‘삐끼’라 불리우는 아이들이 있었다. ‘루이비통 특A급’이나 ‘샤넬 SA급’을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고용된 젊은 남자들이.

나는 삐끼의 얼굴을 금세 알아봤다. 그는 3학년에서 가장 춤을 잘 추던 오빠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세트처럼 ‘루이’도 있었다. 루이는 변한게 없었다. 1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얼굴과 표정과 분위기와 기타 등등. 정말 ‘그대로’였다. 그와 눈이 마주칮마자 나는 바로 뒤돌아서 다른 길로 걸어갔다.

작년에 최제훈 작가의 <퀴르발 남작의 성>이란 단편집을 읽고 감탄을 마지 않았었다. 어떻게 이런 작가를 여지껏 모를 수가 있었을까. 그 번뜩이는 재치, 기발한 상상력, 날카로운 유머감각. 8년 전의 소설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세련되어서 정말 놀랐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그의 책은 종종 “나만 아는 너무 재밌는 한국 소설”, “이대로 묻히기엔 너무 아까운 한국 소설”로 꼽히곤 했다. 실제로 <한국 소설이 좋아서>란 책과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에 정확히 위와 같은 뉘앙스로 실리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추천하고는 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오랜 기간 소식이 없다가 몇달 전 드디어 나온 그의 신작 <천사의 사슬>. 첫장을 펼치며 얼마나 기대에 찼는지 모른다. 그리고 읽으면서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루이’를 생각해냈다. 10년 동안 조금의 변화도 없던 루이.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던 루이.


<퀴르발 남작의 성>은 2010년 작품임에도 요즘 것처럼 신선해! 란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었지만, 여전히 그것은 과거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걸 한꺼풀 깔고 느꼈던 감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2019년에 정확하게 비슷하게 쓰여진 이야기들을 본다는 것은....26살짜리가 16살 때와 정확하게 같은 모습으로 같은 분위기로 같은 태도로 있는 것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 날 이태원에서 참 슬펐다. 그리고 오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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