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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Feb 23. 2019

홍콩에서 미남을 부르는 표현은?

<풍선인간>을 읽고

외국인들이 미국인의 무식함(?)을 조롱할 때마다 종종 등장하는 사례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어렸을 때 미국사람들은 자막 읽는 걸 싫어해서 외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래서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그 모양(...)인가!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고.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영화는 문화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매체이다. 그리고 당시 미국은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세계의 중심이었다. 즉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귀에 겉도는 이질적인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귀찮게 별도의 수고를 들이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던 것.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건 어떤 의미를 담고 있건 간에 말이다.

같은 선상에서 다른 나라들이라고 또 특별히 다른가 싶은 생각도 든다. 한국만 하더라도 주로 미국이나 일본의 컨텐츠가 유통되고, 그 밖에는 일본, 중국, 끽해야 영국, 프랑스 정도에 불과하다. 말레이시아나 베트남 혹은 아프리카,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사람들이 무슨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지 아는 사람도 관심이 있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문화적으로도 뭔가 영향력이 있거나 권위나 힘을 가진 국가의 것이 선택과 인정을 받는다는 이야기. 반대로 말하면 문화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이익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한류 열풍이나 한국 영화나 소설이 점차 인정받는 분위기는 굉장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국뽕차원에서가 아니라, ‘나’라는 개인의 맥락을 타인에게 이해받을 여력이 좀 더 많이 생기기 때문에. 미개하거나, 이해할 수 없거나, 혐오스러운 어떤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던 행동들이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이렇게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하며 소개할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여간 국내에 소개된 첫 홍콩 작가라고 하는 찬호께이의 소설집 <풍선 인간>을 읽었다. 문화가 발달할수록 다양성에 대한 욕구도 커지는 것인지, 최근에는 이처럼 생소한 외국 작가들이 조금씩 발굴되는 듯하다. 대표작인 <13,67>은 이미 베스트셀러에 올랐었다고 하는데, 좀 두꺼워보여서 패스하고 만화 같은 표지에 가벼워 보이는 단편집 쪽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읽고 난 결론은 딱 그 느낌대로. 어느 날 갑자기 타인의 몸속 장기를 임의로 조종하는 능력을 갖게 된 사이코패스 살인청부업자에 관한 4가지 단편으로, 굉장히 가볍고 스피디하게 전개되어 아무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얼마나 가벼운지 마치 네이버 웹툰을 보는 느낌이었다. 티비를 켜놓은 채로 동시에 읽는 것도 가능할 정도. 가볍고 잘 읽혀서 좋지만 굳이 이런 책을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모든 영화나 책이 심각하고 진지한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으므로 재미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건 당연히 괜찮다. <풍선 인간>의 경우 딱히 지루하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엄청나게 재미있지도 않아서 문제지만.

그래서 이 책을 읽고 홍콩의 어떤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느냐고 한다면....홍콩에서는 얼굴이 잘생긴 남자를 보고 ‘여심저격수’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는 것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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