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자신의 아이를 사랑할 수 없었던 엄마,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조차 허락받을 수 없었던, 너무나 엄마가 그리웠던 나머지 말썽을 부린 뒤 따귀를 맞으면서도 얼핏 기쁨을 느끼던 고독하고 불행한 유년을 보낸 아이, 분신과도 같았던 형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남성, 가장 친한 친구에게 뼛속 깊은 시기와 질투를 느끼며 그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여성 등. 토니 모리슨의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는 각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닌 개인들이 다시 서로를 상처 입히고 또 그와 동시에 구원하는 이야기이다. 2015년에 나온 소설인데 거의 아흔이 다 되어가는 작가가 썼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처는 극복될 수, 혹은 구원될 수 있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비롯하여 온갖 적의로 똘똘 뭉친 세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어떤 선의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지만,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너무 ‘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소설 속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처럼 끔찍하지만, 그 결말은 현실에 비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토니 모리슨은 개별 인물들을 통해 결국 상처를 직시하는 것이, 그리고 서로에게 진실을 털어놓는 것이, 그 고통과 싸우는 것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고 말하고 있지만, 늘 그렇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참혹하기 때문에.
⭐️⭐️⭐️
사교 클럽에서, 동네에서, 교회에서, 여학생 클럽에서, 심지어 유색인 학교에서마저 피부색에 따라 - 연한 색일수록 좋아 - 우리끼리 서로 구분하는 걸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마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그것 말고 달리 어떻게 작은 위엄에라도 유지할 수 있겠어? 달리 어떻게 드러그스토어에서 누가 나한테 침을 뱉는 것을, 버스 정류장에서 누가 팔꿈치로 밀치는 것을, 백인이 보도 전체를 차지할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 도랑으로 걷는 것을, 식료품점에서 백인 손님한테는 공짜인 종이봉투에 5센트를 내는 것을 피할 수 있겠어? 온갖 욕설을 듣는 건 말할 것도 없고. -p.15
남편 루이스는 기차역에서 잡역부로 일하는데 집으로 돌아오자 정말 미친 여자를 보듯 나를 봤고 목성인을 보듯 아이를 봤어. 그는 욕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입에서 “염병할! 도대체 이게 뭐야?” 하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그렇게 된 거야 - 그래서 그 사람과 싸우게 됐지. 우리 결혼은 박살이 났어. 함께 삼 년을 잘 살았는데 애가 태어나자 그 사람은 나를 탓했고 롤라 앤을 마치 남처럼 취급했어 - 아니, 그 이상이었지, 원수 취급했어. -p.16-17
게다가 복지수당 담당 직원들은 마치 침을 뱉는 것처럼 비열하게 군다니까. 내가 마침내 일자리를 얻어 더는 그 인간들을 볼 필요가 없었을 때 나는 그 인간들은 우리한테 비열하게 굴면 빈약한 봉급이 불어나는 느낌인가봐, 그래서 우리를 거지처럼 대한 거야. 룰라 앤을 보다가 다시 나를 볼 때면 더 심했어 - 내가 뭘 속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애를 키우는 문제에서 아주 조심해야 했다고. 엄격해야, 아주 엄격해야 했어. 룰라 앤은 얌전하게 구는 법을, 머리를 숙이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어. 아이가 이름을 몇 번 바꾸든 그건 상관없어. 피부 색깔은 그 아이가 을 지고 다녀야 할 십자가야. 하지만 내 잘못은 아니야.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야. 아니야. -p.19
어느 게 더 나쁜 건지 모르겠네.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것과 노예처럼 두들겨 맞는 것 가운데. -p.59
“괜찮아, 베이비, 넌 다른 사람의 악에 책임이 없어.”
“알아,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고칠 수 없는 것에서는 배워.”
“뭘 고쳐야 하는지 항상 알 수 있는 건 아냐.”
“아니, 알 수 있어. 생각해. 우리가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정신은 늘 진실을 알고 모든 게 분명해지기를 원해.” -p.82
우리는 살인범, 방화범, 마약 밀매범, 폭탄을 던지는 혁명가, 정신병자들로 이루어진 무더기의 맨 밑바닥에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해치는 것은 그들의 생각으로는 하급 가운데도 최하급이었다 - 웃기는 건, 마약 밀매범은 자기들이 누구한테 독을 주고 그들이 몇 살인지 아무런 관심이 없고, 방화범은 그들이 태워 죽이는 가족에서 아이들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탄을 던지는 사람들은 대상을 선별하지 않고 정확하지도 않다. -p.96
그녀는 자기 연민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 강인한 어린 소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놀랍게도 전혀 질투심이 섞이지 않은 동반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여자아이들이 가까워지듯이. -p.146
내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어. 전에는 아무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스티브와 에벌린이 나를 집에 받아주고 그 모든 걸 다 해줬지만 나를 구하기 위해, 내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위험에 던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거야. 하지만 나의 검은 여인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그렇게 했어. -p.149
그 행동가들은 보수건 진보건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꿈을 꾸는 것처럼 보였다. 혁명가들은 무장을 했건 평화적이건 자신들이 ‘승리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누가 통치할 것인가? ‘민중’이? 제발. 그게 무슨 의미인가? 최선의 결과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념을 소개하는 것이고, 어쩌면 정치가가 거기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관객을 구하는 연기다. -p.170
나도 달아났어, 브라이드, 하지만 난 열네 살이었고 나를 돌봐줄 사람이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 자신을 만들어낸 거야, 나 자신을 세게 단련했지. 너도 그랬다고 생각해. -p.190
저 아이들은 저러다 날려버릴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각자의 상처와 슬픔에 관련된 작고 서러운 이야기에, 인생이 그들의 순수하고 깨끗한 자아에 쓰레기처럼 던져놓은 오래된 문제와 고통에 매달릴 거야. 그러면 각자 그 이야기를 계속 다시 쓰겠지, 뻔한 플롯이고 주제도 다 짐작하고 있는데, 억지로 의미를 만들어 내면서, 애초의 유래는 잊어버리고. 이 무슨 낭비인가.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