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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Mar 15. 2019

청춘의 감정들

<그래도 우리의 나날>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나... 당시 알고 지내던 남자아이가 술을 마시다 우울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정말로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자기를 좋아하는데, 만날 수 없어서 슬프다고. 뭐가 문제냐고, 둘 다 서로 그렇게 좋아하면 만나면 되지 않느냐고 되묻자 그는 말했다. 함께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문제라나. 말인즉슨, 좋아하기는 하는데, 사랑을 하는 것까지는 아니라서 함께할 수 없고, 그것 때문에 슬프다는 것이다. 그 마음이 단순히 좋아하는 것인지, 사랑인지를 자기는 아직도 모르겠다고. 그것이 혹 어떤 정념과 같은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기 위해 같이 잠까지 자보았으나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었다고 술을 마시다 말고 막 통곡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에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다. 좋아하면 만나면 되고, 안 좋아하면 안 만나면 그만이지, 뭘 좋아는 하는데 사랑은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잤으면 잔 거지 눈물은 또 왜 흘리는지. 왜 멀쩡하고 간단한 문제를 배배 꼬아서 어렵게 만드는 지도 이해가 가질 않았고, 자기 연민과 감상에 젖어 별 쓰잘데 없는 고민을 한다는 생각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자기 연민과 감상에 젖은 행동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한편으로는 그 또한 청춘의 어떤 면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심각하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지나치게 가벼운 동시에 또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진지해서 찌질하기까지 한. 결국은 다들 고작 20살, 21살짜리들이었으니. 나의 쿨병까지 포함하여 말이다.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그런 불안하고 흔들리는 청춘의 여러 가지 면모가 담겨있는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얼핏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론 그 결은 조금 다르고.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비슷한 이야기들. 불안함, 쓸쓸함, 외로움, 그 어쩌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들. 아마 호불호가 꽤나 갈릴 법한 작품일 것 같다. 사람에 따라 굉장히 어리광을 부리고 징징대는 이야기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실제로 다소 그렇기도 하고. 이건 전후 일본소설에서 많이 느껴지는 감성이기도 한데, 아마 시대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청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20대 초반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소설이라는 평을 어디선가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 시절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더 와 닿는 이야기일 것 같다. 지나오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어서.


⭐️⭐️⭐️⭐️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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