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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Apr 01. 2019

답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골든아워>

첫째를 임신했을 때 엄마가 많이 아팠다. 남편은 해외에 있고 검진 때문에 혼자 친정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저녁 엄마가 갑자기 온몸이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했고, 평생 심각한 병치레를 해본 적 없던 분인지라 식구들은 모두 대상포진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다음날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에 갔는데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과 다르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모르겠다며 이런저런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여 결국 예상하지 않았던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입원 후 여러 가지 검사를 했으나 원인은 불분명했다. 엄마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통증을 호소했다. 진통제도 듣질 않았고 밤새 끙끙 앓고 잠도 못 잤다. 그런 엄마를 보며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끽해야 2-3일 후 끝날 줄 알았던 엄마의 병원생활은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일주일을 넘기더니 한 달 가까이 아침마다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너무 아파요...” 그 뒤의 진통제 투여, 반복되는 각종 엑스레이와 피검사.

점점 더 안 좋아지는 듯한 엄마를 보며 하루는 이러다 엄마가 이대로 일어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에 병원 1층 대기실에 앉아 엉엉 울었다. 답답한 마음에 자주 가던 커뮤니티에 한탄 글을 올렸는데, 어떤 댓글을 보고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당장 병원 옮기지 않고 뭐하세요!!!!” 그 길로 퇴원시켜주지 않겠다는 병원 측과 이러다 우리 엄마 죽으면 책임질 거냐는 식으로 한참을 다투고선 바로 짐을 빼서 삼성병원으로 갔다.

병원만 옮기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삼성 병원에 도착한 순간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응급실 앞에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내놓으라 하는 종합병원의 응급실 진료를 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하기사 병상은 정해져 있고, 인력도 한계가 있고, 아픈 사람은 넘쳐나는데, 모든 이를 다 케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장 숨이 끊어져가는 사람 앞에서 아파 죽겠다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육안으로 보기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 같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려보내거나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픈 사람들, 특히나 여기저기 돌다가 거의 최후의 장소로 거기까지 흘러왔을 사람들의 고집은 쉬이 꺾일 리 없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곳곳에 널려 버티고 있었다. 우리 가족 역시 조금 고심하다가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박스를 구해다 끙끙 앓는 엄마를 눕히고 대기했다. 천만다행으로 새벽 4시쯤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엄마의 통증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한 간호사 덕분이었는데, 병원에 도착한 지 5시간 만이었다.

다행히 삼성에서는 원인을 금방 밝혀냈다. 신경에 바이러스가 감염된 것이라고 했다. 수술을 하든 약물을 쓰든 2개월 이상 치료해야 하는데 문제는 응급실에 자리가 없었던 만큼 병실에도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환자가 빠질 때까지 응급실에 머물러야  했다. 결국 만삭의 나와, 일을 하고 있던 아빠, 취업 준비를 하던 동생이 번갈아서 자리를 지키며 일주일간을 보냈다. 인생에서 가장 긴 일주일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이후 중환자실로 갔다가 일반 병실로 옮기면서, 긴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완전히 회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하다가도, 그때 만약 병원을 옮기지 않았더라면, 응급실 앞에서 버티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버텼는데도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해진다. 그러다 보면 그때 간호사에게 새삼 고맙기도 하고, 운이 참 좋았다 싶고. 그러다가도, 순간 모든 것이 불합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 아픈 사람들이 응급실에 들어갈 수 없는지, 응급실의 인력은 왜 그토록이나 부족한지, 병상은 왜 그렇게나 모자란 지 등등에 대해서. 왜 응급실에 입성하는 것이 ‘버티기’와 ‘운’에 의존해야 하는지.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읽으며, 엄마가 아팠던 그 시기를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국종 교수가 외상외과를 맡은 후 외상센터를 세우고 이끌어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한 이야기들 속에서는 의료비용, 인력 수급, 설비 및 시스템 부족에 대한 문제점이 끊임없이 부각된다. 분석적으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정리하기보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산 증언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흔히 기득권으로 묘사되기에 이렇게나 고통스럽게 일을 하는 분들이 현장에 계실 줄 몰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역시 인간의 상상력이란 보잘것없어서 보거나 듣지 않으면 자신이 아는 것 이상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국종 교수는 자신이 유달리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봉사정신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밥벌이라서 계속할 뿐이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데, 그 대목을 읽으며 ‘성격이 팔자’라는 오래된 말에 대해 생각했다. 성격이 곧 운명이라고. 본인은 아니라지만 여태껏 이토록 고생하고 고통을 겪는 까닭은, 그가 그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하고 직업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어서일 것이다. 그가 들으면 화가 날만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싶지만, 읽다 보면 온갖 문제점이 산발한 의료계의 현실과 계속되는 환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심신이 매우 지치는 것도 사실이기에 쉽게 권하기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또한 어떠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도 아니다. 책을 읽은 뒤에도 나는, 그래서 응급실 앞에 환자들이 대기하지 않게 하려면, 운과 버티기에 의존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전히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을 떠나서, 이런 분이 계시다는 것이 그저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


외상외과 환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노동자들이고, 정책의 스포트라이트는 없는 자들을 비추지 않는다. -p.8



그의 목숨을 붙들고 있는 인공호흡기와 인공신장기를 보며, 그것들이 요구하는 ‘돈’을 생각했다. 이것들은 선진국에서만 생산되는 ‘몹시 비싼’ 첨단 의료기기이고, 제대로 국산화조차 되지 못해 일분일초마다 돈을 먹는 기계였다. 그러나 이것들이 없으면 환자는 수술을 받아도 살지 못한다. 환자에게 정확한 용량을 투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맥주사 펌프도 사정은 같았다. 눈앞의 남자나 내 환자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가난한 데도 가장 비싼 외제 장비를 동원한 첨단 치료가 필요했다. 가난한 그들이 치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병원비를 지불하지 못하면, 그것은 가난한 내 부서로 적자가 되어 떨어져 내려왔다.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상황에서 결국 녹아나는 것은 이 일을 하는 나와, 그런 나에게 이런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환자이다. -p.67



폭력은 그렇게 깊어지며 번져나갔다. 밖에서 일어나는 주먹다짐과 칼부림이 집 안에서도 빈번했으나 피해자들은 대개 침묵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상대를 벌하지 않았고, 생계가 상대에 달러 있어 벌하지 못했다. -p.168



병원 측에서 언론을 상대로 브리핑을 했다. 나는 언론과 접촉하지 않았다. 병원은 인터뷰 중에 ‘아주대학교 병원이 지난 10년간 중증 외상 분야를 집중 육성해왔다’라고 했다. ‘10년’과 ‘집중 육성’ 스이에서 나는 씁쓸해졌다. 내가 겪어온 10년과 병원이 말하는 10년은 같지 않았다. -p.250



이렇게 국가적으로 주목받는 환자라면 관행에 따라 서울의 유명 의과대학 부속 병원 등으로 전원 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아무 말도 없었을 것이다. 지방의 신설 사립 의과대학 병원에 환자가 입원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석 선장은 별것 아닌 ‘경증 환자’가 되었고 나는 ‘사기꾼’으로 몰리는 듯했다. 의료계에서도 줄서기와 편 가르기는 만연했고, 의료계여서 더 깊었다.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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