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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Aug 28. 2019

혼자를 기르는 법

실은 한동안 경미한 우울에 시달렸다. 원인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몇 주동안 글을 한 편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칼럼이랑 페이스북이나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은 다 뭥미? 싶겠지만  책에 들어갈 원고들은 업로드하지 않은 채로 별개로 쓰고 있는데, 그걸 못 쓰고 있다는 이야기. 참 희한한 일이다. 페이스북에 올린다고 생각하면 간단히 써지는데 책에 들어갈 꼭지라고 생각하니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다. 노트북의 하얀 바탕을 볼 때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절벽 앞에서 누가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괴로워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으니 남편이 옆에서 그럼 페이스북에 올린다고 생각하고 써봐, 혹은 비공개로 써봐, 했지만 그게 또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연습 때는 잘하다가 꼭 실전에 가서 망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다. 어릴 때부터 늘 그랬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쓸 때 부엌에 서서 튀김을 튀기는 기분으로 자리에 앉는다고 한다. 잘 쓰려고 애쓸수록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깨를 풀고, 손목에 힘을 빼고, 가볍게, 부담 없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하루키 급이나 되어야 머리로 알고 있는 걸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심지어 난 튀김도 못 튀긴다고. 신혼 때 돈까스 튀기다 온도 조절 못해서 시꺼멓게 된 적이 있다. 결국 부담 갖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고 괴로워하다가 현실도피하는 것으로 마무리. 조금 버텨보다가 결국은 화면 앞에서 도망쳐서 남의 글을 실컷 읽거나, 그마저도 괴로워서 잠으로 도피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도피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회사일이 괴롭다고 무단결근을 한다거나, 학교 수업이 싫다고 자퇴를 해버리면 처음에는 후련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가 커지고 결국은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

며칠 전에는 훌륭하신 분이 초대해 주셔서 좋은 자리에 다녀왔다. 뭔가 기분 전환이 될까 싶어서 다녀왔고, 그 자리 자체는 참으로 즐거웠다. 문제는 마음속에 불안과 우울이 있다 보니 결국 자제력을 잃고 주량보다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이다.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다음날 많이 괴로웠다. 몸이 힘드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하루 종일 누워서 지냈다. 스스로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자제력이 없는 나, 번번이 회피하는 나,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나, 어리석은 나, 나약한 나, 글 쓴답시고 아이들도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하는데 그나마 그 글마저도 제대로 못 쓰는 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 멍청한, 바보 같은, 쓰레기.

한 때 우울증 때문에 자살했다는 연예인들의 소식을 들으면 안타깝고 슬픈 동시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었다. 아주 심각한 우울증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한순간에 충동적으로 죽을 결심을 할 수가 있나? 어떻게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다. 누구나 잠깐씩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순간을 겪을 때가 있는데,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니라는 것,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치 않은 멜랑콜리하고 나약한 감정이라는 것, 그냥 몸을 웅크리고 잘 견디면 된다는 것, 그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 안에 들어있는 순간에는 어쩌면 문득, 그냥, 충동적으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침대에 한참 누워 있다가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긴급조치가 필요한 순간. 발목이 아파 한동안 쉬었던 달리기를 다시 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근래에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했던 시기는 몇 달 전 꾸준히 달리기를 했을 때였던 것 같다. 10킬로미터를 달렸던 날 썼던 일기. “난 달리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좀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어쩌고 저쩌고.” 인간의 정신만큼 참으로 깨지기 쉽고 연약한 것도 없다. 좀 뛰었다고 행복해졌다가, 글 좀 안 써진다고 죽을 것 같고. 참 바보 같지만 인간이란 결국 그 정도인 것 같다.

일찌감치 운동복을 갈아입고 런닝머신을 뛰었다. 고작 두어 달 쉬었던 것뿐인데, 1km도 지나기 전부터 숨이 턱턱 차오르면서 스스로가 10km까지 뛴 적이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렇게 힘든걸 전에는 어떻게 했지? 하는 생각뿐. 그런데 생각해보면 달리기가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다만 거리를 늘리고 연습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이다. 죽을 것 같이 힘든 와중에 유난히 죽을 것 같이 힘든 구간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넘기면 조금 나아진다는 것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죽을 것 같았던 그  순간을 넘길 수 있었던 것 같고.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오늘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유난히 힘들었다. 정말 죽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몸을 밀어붙이지 않으면 마음이 죽을 것 같아서 이를 악물고 뛰었다. 한때는 하루키나 김연수나 그 외 달리기를 열심히 잘하는 사람들의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힘든걸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하나 싶었던 것. 그런데 오늘 뛰면서 문득, 어쩌면 그들은 죽고 싶지 않아서, 망가지고 싶지 않아서 그만큼 마음이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이라 더 이를 악물고 뛰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쓰기도 사실은 마찬가지겠지.

5km도 못 뛰었지만 많이 힘들었는지 집에 돌아와서까지 계속 구역질이 났다. 변기를 붙들고 한참 웩웩하는데,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역시 인간은 호르몬의 노예다. 어쨌든 이렇게라도 조금씩 매일매일을 견뎌나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렇게 보살피고 길러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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