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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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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Oct 30. 2019

설기 이야기

설기는 박스견이었다. 대학교 2학년 가을, 아마도 이맘때, 이대역 2번 출구 계단의 개 파는 아줌마가 가지고 다니던 라면박스 안에 다른 강아지들 7-8마리와 뒤엉켜 있었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잠깐 보고 지나칠 생각이었는데 그만 충동적으로 집으로 데리고 오고 말았다. 근처에 있는 ATM에서 돈을 뽑아다가 아줌마에게 주었다. 7만 원이었던가.

웬 하얀 털 뭉치와 함께 돌아온 나를 보고 엄마는 기함했다. 지하철에서 사 왔다고 하면 혼이 날까 봐 친구 집에서 얻어왔다고 했다. 데리고 올 당시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지만 막상 집에 와서 보니 목욕을 두 번 시켜도 냄새가 빠지지 않을 만큼 더러웠다. 엄마 말로는 노숙자 냄새가 났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파는 강아지들이 매일 아침 경매에서 팔고 남은 병들고 약한 개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도 꽤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씻기고 나니 너무나도 귀엽고 예뻤다. 온 식구가 달라붙어 몇 시간을 지치지도 않고 바라보았다. 처음에 개는 개답게 살아야 한다며 라면박스로 집을 만들어주었던 아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이불을 덮고 자기에 이르렀다. 엄마는 이듬해부터 매해 설기의 생일마다 미역국을 끓였다. 진짜 생일은 알 수 없지만 데려올 당시 40일이라던 개장수의 이야기를 듣고 역순으로 계산한 날짜였다. 온 식구가 개의 애정을 차지하려고 애를 쓰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어느새 애 둘의 엄마가 되었다. 중학생이었던 동생도 결혼을 했고, 엄마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 사이 하루 종일 뛰어다니고 쉴 새 없이 기운이 넘치던 강아지 또한 노견이 되었다.

새까맣고 반들거리던 코는 하얗게 마르고, 윤기가 흐르던 털은 퍼석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잘 걷지도 못하고, 눈동자는 희뿌옇게 변했다. 가끔씩은 터덜터덜 걷다가 멈추고 멍하니 서 있을 때도 있었는데, 마치 자기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를 몰라 어리둥절한 것 같기도 했다.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금요일에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러 다녀왔다. 마음은 아프지만 오래 떨어져 있어서 나름 덤덤할 줄 알았는데도 막상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결국 집에 와서도 안절부절못하다가 다음날 아이들까지 다 데리고 다시 서울에 다녀왔다.

남편 없이 혼자서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것은 처음으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토요일이라 길도 많이 막혔는데. 그러고선 겨우 겨우 도착해서 잘 가라는 인사를 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눈을 감았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생전에 사진을 찾아보는데, 새끼 때 이후로는 사진이 많지 않다. 커가면서 덜 귀여워질수록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고, 그나마도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부터는 죄다 아이들 배경으로 나온 것뿐이다. 한때는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나중에 설사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도 이 마음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정말이지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었을 뿐이다.

오늘 낮에는 좋아하던 산책로에 화장한 가루를 뿌려주었다. 곱게 빻은 돌가루 같았다. 이만하면 개로서 행복한 삶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15년간 오로지 집안과 한강 둔치의 산책로로만 채워진 삶, 하루 종일 주인을 기다리고, 밥을 기다리는 좁은 세계가 과연 어땠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이 또한 지극히 인간 위주의 사고이지만.

기뻤으려나. 슬펐으려나. 행복했으려나. 답답했으려나. 아무 생각 없었으려나. 그 작은 머리통 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개들은 말을 할 수 없으니까.

설기
2004.08.24 - 201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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