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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Nov 23. 2019

구원자가 된 여성

<겨울왕국 2>

겨울왕국 2 보고 왔다. 전작보다 메시지가 훨씬 명확하고 강력해졌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소위 ‘페미니즘 순한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약  영화를 그런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거의 마라탕 4단계 급은   같다.

주인공 여성  명은 극의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며, 오직 스스로의 의지만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특히 남성이 여성의 사랑을 갈구하며 여성이 돌아오기를 내내 기다리고 있는데 반하여, 여성은 이성 간의 사랑보다 훨씬  중요한 어떤 , 이를테면 ‘목소리 상징되는 비밀과 정체성 찾기에 골몰한다.

목소리에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장애물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낸다. 바위를 기어오르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신화  야생의 짐승을 길들이고, 함정에 뛰어들고, 괴물과 맞서고, 고통스러운 진실을 직시하게 되더라도,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난과 슬픔을 그대로 수용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극 중 등장하는 노래 가사를 빌어 이야기하자면, “깜깜한 어둠  빛에 닿을 때까지 /모든 게 달라졌다는  말할 때까지 / 포기는 없어 나를 믿고 해야 할 일을 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목소리를 찾은 여성들은 구원자가 된다. 나라를 구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세계를 구하고, 사랑을 구하고, 결국은 자기 자신까지 구원한다.

극의 말미에 등장하는 주인공 안나를 향한 크리스토프의 고백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는 안나에게 청혼하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안나, 당신은 지금까지 제가 만난 사람  가장 멋진 분이에요.”  대사가 흥미로운 까닭은 지금까지 이런 류의 서사에서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오로지 그의 ‘외모때문인 것으로 그려지곤 했기 때문이다.

왕자들은 보통 공주를 만난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든지, 한눈에 반했다든지, 미모에 사로잡혔다든지 기타 등등의 사유로 신부로 삼으려는 결심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멋있다 이유로 사랑하게  것이다. 얼마  종영한 동백꽃  무렵에서도 용식이가 동백이를 보면서  ‘예쁘다 아닌 ‘멋있다 이야기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평상시에 요정, 님프, 마법사, 괴물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 판타지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미있고 인상 깊게 보았다. 사실 판타지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대담하게 그려내지는 못했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귄이 여성의 글쓰기는 언젠가는 판타지나 SF 닿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현실  너머, 현실  이상을 꿈꾸다 보면 필연적으로 그것을 능가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면서.

나는 왕자의 사랑을 갈구하거나, 왕자의 구원으로 인해 되살아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어 보았던 영화들 역시 어린 시절 접했던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의 수많은 변형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아마 어떤 한계를 만들어냈음은 틀림없을 , 요즘의 아이들은 이런 영화를 보고 자라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 이런 영화를 보여줄  있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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