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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Nov 28. 2019

통조림으로 끓인 추어탕

내가 어린 시절 거의 국민전집처럼 취급되던, 모르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던 동화책 시리즈가 있다. 바로 계몽사에서 나온 디즈니 명작동화. 얼마나 많이 유통이 되었던지 헌책방에 가면  매물이  두 질씩 있곤 했다.

캐릭터도 무척 귀여울 뿐만 아니라 줄거리가 기존 명작동화들 대비 위트있고 재미있어서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동화책 종류가 그리 많지도 않았고,  밖에 볼만한 컨텐츠도 별로 없기도 했었지만.

이처럼 인기가 많은 시리즈였음에도 계몽사가 중간에   망하기도 하고, 디즈니와의 판권 문제로 절판이 되는 비운을 겪었는데, 세월의 힘인지 자본의 힘인지 놀랍게도 며칠  복간을 했다고 한다. 한정판으로 몇천 질만 판매를 재개했는데, 올라온 지 얼마  되어서 바로 품절될 정도로 인기가 엄청났다고.

하여간 전권 50권인가 60권인가 하는  시리즈 중에서도 유난히 인기가 많은  작품이 있다. 바로 <추위를 싫어한 펭귄> <단추로 끓인 수프> 그것이다. 다른 명작동화에서는 거의 찾아볼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갈등이나 사고, 비극이나 재난이 없어서 그런지   이야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역시 아주 좋아했었고.

 중에서 <단추로 끓인 수프> 내용을 살펴보면 아주 철학적이면서도 재미있다.

엄청난 구두쇠인 스크루지 영감 집에 어느 날 조카딸이 찾아오고, 삼촌이 집에 먹을 것을 잔뜩 쌓아두고서도 인색하게 구는 것을  조카는 자기가 단추 하나로 수프를 끓여 보이겠다고 말한다.

  삼촌이 반신반의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커다란 솥에 진짜로 단추 하나만  던져 넣고 휘휘 저으며 수프를 끓이기 시작하는데, 그러다 말고 혼자서 이런 말을 중얼거리는 것이다. “아.... 단추 수프 정말 맛있겠다. 그런데 여기에 ‘ 넣으면  맛있을 텐데.” 

 이야기를 들은 삼촌은 솔깃하여, 그래, 어차피 단추 하나로 끓이는 공짜나 다름없는 수프인데, ‘하나  들어간다고 대수겠어? 오히려 얼마나 이득이야!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 뭐냐고 물어보는데, 그러자 조카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뇨..... 당근만  들어가면.... 샐러리만   있으면.... 감자  알만 넣으면..... 소금만  뿌리면..... 고기  덩이만 넣으면...

결국 삼촌은 꽁꽁 잠가두었던 광을 열어 각종 채소와 온갖 귀한 산해진미를 가져다 바치고, 온갖 향신료도 때려 넣으면서 궁극의 수프를 완성하게 되었는데, 조카는 어차피 단추 하나로 끓인  인색하게  것이  있냐면서 마을 이웃들에게 수프를 전부 나누어주자고 이야기하고, 삼촌은 뭔가 당한 듯한 기분이지만 단추 하나로 끓인 것이 맞으니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같이 사이좋게 나눠먹는다는 그런 훈훈한(?) 결말이다.

엊그제 운동을 하면서 TV 틀어놓고 보고 있는데, 마침 집밥 백선생 추어탕 편이 하고 있었다. 부제는 고등어 통조림의 놀라운 변화. 요약하자면  안에 굴러다니는 고등어 통조림 하나로 식당에서 파는 듯한 추어탕을 끓여내겠다는 것인데, 보다 말고 그야말로 눈을 비비지 않을  없었다.

,  봐유. 고등어 통조림 하나만 있으면 되다니까유.   필요없어유. 일단 프라이팬에 대파 썰어서 참기름에 볶아서 파기름을  줘유.  볶다가 여기에 고춧가루를 넣어서 고추기름을 만들어주고, 되었다 싶으면 이제 물을 부어줘유. 그리고선 고추장 넣고, 된장 넣고, 그다음에 통조림 고등어를 넣어줘유. 그다음 감자 넣어주고, 대파 넣어주고, 버섯 넣어주고, 얼갈이 배추 있잖아유? 얼갈이 배추 있으면 그것도 넣어주고.  없다고? 그럼 괜찮아유. 있는 거만 넣어서 있는 거만. 넣으면  맛이 좋아진다는 거지, 없다고  끓인다는  아녀유. 그리고 이제 끓으면 중간에 다진마늘 넣고, 국간장이랑 액젓 넣어서  맞춰주고.  액젓 없으면 넣지 말고. 뭐든 적당히 하는 거쥬 적당히. 있는 걸루.  다음에 청양고추도 있으면  넣구.  어때유. 추어탕 됐어유  됐어유. 쉽쥬? 그러고서 국물 남은 거에는 이제 소면, 소면 넣으면 어탕국수 되는 거예유. , 집에 있는 고등어 통조림 하나면 된다니께유. 어때유. 쉬워유  쉬워유. 이게  고등어 통조림으로  거라니까.”

그러자 한자리에 있던 게스트들은 감탄하며 외쳤다.

어머나!!!! 집에 있는 고등어 통조림 하나로 이런 멋진 요리가 탄생하다니!!!!!”
추어탕   가도 되겠는데요!!! 정말 대박이다!!! 저도 집에서  먹을  있겠어요.”
추어탕 보통 3-4만 원 하는데 2천 원짜리 고등어 통조림으로 이런 요리를 만들어내다니!! 원가 2천 원으로!!! 우와아아!!”
어떻게 고등어 통조림 하나가 이렇게 변하죠? 우와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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