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라서요.”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니 같은 자리에 계시던 분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았는데, 사실 나는 스스로가 상당히 보수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새삼스레 그 얘기를 뭐하러 하지 싶은 사람부터, 저 사람이 어딜 봐서 보수적이야 하는 사람들까지,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내 모습이 다르게 보이겠지만, 어쨌든 체제를 전복시킬 정도의 급격한 변화를 꿈꾸는 타입이 아닌 차원에서는 보수적인 사람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실은 이조차도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나아진 것이다. 과거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보수적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사형제도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지금 생각하면 이불을 걷어찰 각종 흑역사(...)가 많지만 일단 오늘은 사형제도에 관한 것만.
대학생 때 어학연수 시절에 토론 수업을 많이 했는데 하루는 사형제도가 주제였던 적이 있다. 그때 같은 교실에서 나만 적극적으로 사형을 찬성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들과 전투적으로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역시 흑역사지만.... 하여간 당시 내가 주장하던 논거는 첫째, 범죄 방지를 위한 교훈 차원에서, 그리고 둘째, 범죄자에 대한 징벌적 차원에서, 사형은 존재의 이유가 합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토론 수업을 주도하던 교사가 나의 열변을 듣고 이런 말을 했었다. “그래,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다른 인간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고 믿지만, 어쨌든 네 말도 일리가 있어. 그런데 만에 하나 그 재판이 오판이라면 어쩔래? 누명을 썼다거나, 재판 자체가 잘못된 경우에 사형 판결을 받아서 형이 집행된 사람은 그 목숨을 되돌릴 수 없잖아. 무기징역이든 30년형이든 헛되게 감옥살이를 하면 억울한 건 다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누명을 벗을 기회라도 있는데, 사형은 일단 한 번 집행되면 돌이킬 수 없잖아. 그땐 어쩔 거야?”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나는 오판의 가능성이 극히 적을뿐더러, 그런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오판으로 인한 실익보다는 사형제도를 존치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봐. 오판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의 경우는 거의 들어보지도 못했고. 설사 있다고 하면 매우 가엾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개인과 사회를 놓고 보면 사회가 우선 아니겠어?”
물론 지금의 나는 절대 저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날의 토론은 결국 저렇게 각자의 차이만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가끔씩은 저런 대답을 했던 십여 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겪었던 일들, 사회를 바라보기 이전에 인간 한 명 한 명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 계기를 곰곰이 되돌아보게 될 때가 있다. 사형제도에 관한 견해 한정이기는 하지만 만약 당시에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으면, 그런 시점이 훨씬 더 빨라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오판의 가능성이 극히 드문 사형 선고” 중에서, 그 극히 드문 예외적인 케이스를 다룬 책이다. 놀랍게도 지금은 수구XX의 선봉 취급을 받는 조갑제 기자가 쓴 책으로, 믿기 어렵겠지만 그에게는 지금과 다르게 과거 기자로서 굉장히 명성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 그는 “우연히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었다는” 사형수의 사연을 듣고 4개월 간 집요하게 취재한 끝에, 결국 사형제도 전반을 돌아보게 만들며 고문수사를 통한 허위자백을 고발하는 명저를 남겼다.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다는 것은 지금으로선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사실 1970-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수사방법이었다.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를 보면 이에 대한 고증이 굉장히 잘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영화보다도 훨씬 더 참혹했다고 한다. 단순히 때리는 것을 넘어 코에 고춧가루를 넣거나, 물에 담그거나, 전기를 통하게 한다거나 등등. 결국 수사를 받다가 중간에 자살한 사람들도 많고, 풀려난 이후에도 신체적 정신적 상해로 평생 동안 고통받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그만큼 야만적인 시대였다.
다시 오휘웅 사건으로 돌아가면, 1974년 12월, 인천에서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한 남자가 두 아이들과 함께 죽은 것을 두고, 경찰은 처음에 아버지가 비관하여 자식들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보다가, 여러 정황 및 증언에 의해 죽은 남자의 아내인 두이분이 오휘웅이라는 사람과 내연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두이분이 “오휘웅이 나와 같이 살고는 싶은데 남편과 아이들이 방해되니 죽여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는 증언을 하고, 이로 인해 오휘웅은 알리바이가 있음에도 구속이 되었는데, 수사과정에서 한 자백이 결정적 증거가 되어 훗날 재심을 청구하였으나 결국 인정받지 못하고 사형을 당하게 된다. 처음에 오휘웅이 범인이라 주장하던 두이분은 재판 중에 자살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오휘웅이 진범인지 아닌지는 끝내 아무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지만, 조갑제 기자는 관련 자료와 판결문, 주변인들의 증언을 철저하게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책 전체에 걸쳐 오휘웅이 무죄였을 것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암시한다. 결국 고문을 받아 한 허위자백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이 재판까지 가게 되었고, 모순과 허점 투성이인 수사기록을 보고서도 판사 중 그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고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쓴 기자 본인은 사형제도 폐지를 원하지 않고 존치를 찬성하며 단지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데, 아무래도 읽다 보면 사형제도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그와 동시에 당시의 재판 시스템이 얼마나 날림이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사법 시스템 자체에 대한 고민도 하게 만든다. 사실 판사들 또한 한 명의 직장인에 불과할 터, 업무는 과중하여 사건을 빨리빨리 쳐내야 하는 중에 모든 사건을 세심하게 살피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직장 내 서열이 명확한 가운데 주심이 어떤 판단을 내린 사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당시의 고문수사와 허술한 사법시스템 하에서는 오휘웅 사건 같은 비극이 어쩌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같다. 1986년에 출간되었지만 30년 지난 오늘날까지 울림을 주는 훌륭한 책이라 생각한다.
다만 저자가 책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는 묘하게 의구심이 들고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오휘웅 사건뿐만 아니라 유사한 다른 사건을 예시로 들면서 어리숙한 남성이 간교한 여성의 무고로 인하여 곤란에 처한 구도를 계속해서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의 묘사나 인물에 대한 설명이 독자로 하여금 여성은 무고를 일삼는 존재, 남성은 무고를 당해 억울하게 피해를 받는 존재라는 무의식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할 수도 있을 듯싶다.
그러니까 저자가 오휘웅 사건을 집요하게 파게 된 계기가, 억울한 ‘사람’을 보고 느낀 분노인지, 억울한 ‘남자’를 보고 느낀 연민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실상 남성의 범죄를 뒤집어쓴 여성 피해자 역시 적지 않을 것임에도, 책 속에서는 죄다 남자 이야기만 나올 뿐 여성 피해자에 대한 취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