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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Dec 29. 2019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끝나나

<사랑의 생애>

요즘 넷플릭스에서 테라스하우스와 아이노리(러브 버스)라는 일본판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는 중이다. 테라스하우스는 남자  여자 셋을  집에 모아놓고 같이 살게 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패널들이 관찰하는 형태고, 아이노리는 남자 , 여자 셋을  버스에 타게  다음 세계 전역을 여행하게 하여  사이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는 프로다.

말하자면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 같은 미팅 프로그램의 원조격이라고   있는데, 조금 다른 점은 테라스하우스와 아이노리는 기본적으로 ‘연애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출연진 중에는 내면의 자신을 찾고 싶어서, 일을  잘하고 싶어서, 새로운 세계를 알고 싶어서 등의 이유로 찾아온 사람도 많다. 그리고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도 조금 다르다. 일단 멤버에 합류한 이후에는 본인이 원할 때까지 남아 있을  있다.

놀라운 지점은 그렇게 남녀를  곳에 모아 놓다 보면, 반드시 애정 문제가 생긴다는 . 애인이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멤버 가운데 본래 자기가 좋아하는 타입이 있었든 아니든, 연애를 목적으로 들어온 것이든 아니든, 반드시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게  명일 때도 있고,  이상일 때도 있고.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썸과 애정관계가 생겨난다. 마치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남녀를 모아놓으면 반드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   번의 열외도 없이.

그리고 그렇게 한쪽에서 애정 문제가 탄생하는 사이에 다른 쪽에서 분란과 다툼 역시 생겨난다. 물을 떠다 주는 등의 아주 사소한 행동으로 상대를 좋아하게 되었다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물을 떠주는 등의 아주 사소한 행동을 보며  호감을 거둬들이고, 상대의 호감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하기도 하고, 상대가 싫지만 자신의 욕구를 위해 억지로 좋아하는 척하고,  모습을 두고  가식적인 행동을 하느냐며 다른 사람들이 따지기도 하고, 화면 밖에서 보기에는 정말 1 대단치도 않은 남성 혹은 여성을 두고 서로 피가 튀기게 싸운다. 이런 모습들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그러다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잉을 했니  했니 등으로 싸우는 모습을  때면, 누가 좋아요를 눌러줬니  눌러줬니, 차단을 했니  했니 하는 걸로 싸우는 페이스북 안의 사람들이 생각나면서 대체 이런 대단치도 않은 걸로 치고받고 싸우고 울고 웃고 사랑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프로그램들이 이토록 재미있는 이유는 인간들이 모여있다 보면 결국은 그런 아주 구질구질하고 사소하고 하찮기 짝이 없는 문제가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런 문제에서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랄까, 어떤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인  같다.

말하자면 일정 숫자 이상의 인간을 모아놓으면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반드시 애정문제가 생겨나기 마련인 것이다. 물론 애정이라 함은 단순히 섹슈얼한 욕구만이 아닌, 권력욕, 인정욕, 존경, 선망, 순수한 우호, 다정, 상대에 대한 미움, 멸시, 증오, 경멸 등을 모두 포괄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사랑 운명이니 타이밍이니 어쩌고 하는 대단한  아니라, 그저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 질병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흔히 우울증을 감기에 비유하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하는데, 우울보다는 사랑 쪽이 훨씬  감기와 가까운  같다. 일단 사람이 많이 모여 있으면 반드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는 , 같은 바이러스라도 사람에 따라 면역력이 다르다는 , 일단 걸리게 되면 쉽사리 낫지 않는다는 , 질병처럼 걸린 사람의 상태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바꾸어 놓는다는 , 치료(?) 되고 나면 마치 그런 일이 있었던  마냥  낫는다는 , 가끔은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는  등등.

그런 면에서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 표현을 많이 쓰곤 하는데,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누군가의 가슴 안에 들어온다는 표현이  맞는  같다. 마치 바이러스가 숙주의 몸에 기생하여 존재를 퍼트리듯이, 사랑 역시 어떤 사람의 몸에 들어가  사람 안에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이다. 일단   사랑이 숙주에 들어온 뒤에는  대상이 되는 사람은 거기에 저항하기 힘들고, 몸과 마음이 마구 무력해지고, 사랑에 사로잡히고, 지배당하고, 자기가  이러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런 행동을 하고, 머리로는 뻔히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 몸은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하는 등등.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 읽고 무척이나 놀랐다. <사랑의 생애> 사랑에 빠진  명의 남녀를 두고 그들 안에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소설인데,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는 , 바이러스처럼 사람의 몸을 숙주 삼아 퍼져나간다는 발상이 평소 내가 하던 생각과 너무나 비슷해 무척이나 공감하며 읽었다. 사랑의 본질적인 부분을 고찰하는 대목이 많아서 소설이라기보다는 인문학이나 철학서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별반 눈길이 가지 않아 고백을 받고 거절했던 사람을 돌연 좋아하게 되고, 일단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이후에 마음이 걷잡을  없이 나아가고, 그런 과정에서도 상대에 대한 은연 중의 우월감을 어쩌지 못해 후회할만한 행동을 하게 되고,  질투에 눈이 멀어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구잡이로 폭주하게 되고, 딱히 아주 매력을 느끼지 못하던 상대였음에도 계속해서 눈길이 가고 벗어나지 못하는 어떤 상태와 심리에 대한 설명이 아주 절묘하고 정확하게  나타나 있다.

과거 나를 차 버린 남자가 어느 날 돌연 연락해서 함께 밥을 먹는 와중에 현재의 남자가 등장해 온갖 난리 법석을 떤다는, 정말이지 플롯이라고  수조차 없는 간략하기 짝이 없는 줄거리를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있는 사람은 이승우 외에는 없을 것이다.


죄수는 탈옥을 해서 감옥 밖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감옥을  개조해서  안에서 살고 싶은 욕망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개의 욕망은 충돌한다. 감옥에서 나가려고 하면 개조해서 살려는 욕망이, 개조해서 살려고 하면 탈옥의 욕망이 맞선다. 그는 나가지도 못하고 개조하지도 못한다. 그는 온통 그녀 생각에 사로잡혀 지내면서도 그녀를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것이 카프카의 난처한 심리적 포지션이다.
사랑이 없으면   없지만 사랑을 하며  수도 없는  난처한 사람은 사랑을 하지도 못하고  하지도 못한다. 사랑을 하려고 하면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사랑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사랑을 하지 않을 때의 불안이 덮치기 때문이다.” -p.66-67


사랑이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이 불가능한 것을 욕망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 욕망하는 것은 연인의 마음이다. 그것을 욕망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내부에 살기 시작한 사랑이다. 그런데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질 방법은 없다. 누구에게도 그런 능력은 없다.
사랑이 시작되면 그걸 가질  없다는  모르게 된다.  알다가도 갑자기 모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걸 모르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만 그걸 모른다. 모르니까, 모르게 되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필사적으로 연인의 마음을 가지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고, 아무리 필사적으로 매달려도 가져지지 않으니까 괴로워진다. 매달릴수록  괴로워진다.” -p.2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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