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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Nov 02. 2018

소설 한 잔 하실래요?

<소설 보다: 봄-여름> 을 읽고

<소설 보다: 봄-여름> 편을 읽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일년에 네권을 목표로 새로 기획된 시리즈이다. 아마 계절을 테마로 분기별로 출판하려는 것이겠지. 첫 책은 봄과 여름의 합본으로 김봉곤, 조남주, 김혜진, 정지돈, 4명의 단편과 짧은 인터뷰가 실려있다.

김봉곤 - 시절과 기분
김봉곤 작가의 첫 소설집을 불과 얼마 전에 읽었고, 솔직히 말하면 아주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물론 자신만의 색깔과 작품세계가 분명 있기는 한데 미묘하게 취향에서 벗어난다고 할까. 그러나 이 단편은 해당 소설집에 실린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더 좋았던 것 같다.

주인공이 스스로의 퀴어적 정체성을 깨닫기 이전에 사귀었던 대학 때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내용으로, ‘시절과 기분’이라는 제목이 아주 적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이 추억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추억 그 자체보다는 추억 속의 자신, 그 당시 느꼈던 어떤 기분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들어 자주 생각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뒤에 실린 인터뷰에서도 짧게 언급이 되지만 김봉곤 작가는 사람들의 ‘기분’과 ‘분위기’에 대한 포착을 잘 해내는 것 같다.


조남주 - 가출

가장 최근의 소설집 <그녀 이름은>, 그리고 그 직전에 기획 단편집 표제작 <현남 오빠에게>를 읽고 다시는 조남주 작가의 책을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문학성이 떨어지고, 인물이 평면적이고 뭐 이런 걸 떠나서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화가 날 정도로. 그러나 이번 단편은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어느날 70세의 아버지가 가출한 뒤 남은 가족들이 겪는 이야기이다. 역시 작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김혜진 - 다른 기억

같은 사건을 두고도 우리의 기억은 늘 다르다. 같은 사람에 대한 인상도 의견도 모두가 다르다.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최초의 이유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였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한계를 명확히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다른 기억> 역시 그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가까운 사람들의 비슷한 줄 알았지만 상당히 다른 어떤 마음들의.

김혜진 작가 또한 인터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건 그 사람이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 같아요. 대체로 저는 늘 그 차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편이고요. (....) 차이가 드러나는 순간들은 큰 사건이나 사안이 아니고, 사소하고 작고, 때로는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일 때도 있고요. 그런 일들이 결국 관계를 달라지게 하는 것 같아요. 그것 자체가 우리 관계를 바꾼다기보다는 그때 우리의 상황, 너의 기분, 나의 일상 같은 내밀하고 아주 사적이고 우연적인 요소들이 겹쳐져서 영향을 준다는 생각도 하고요.”

정지돈 -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정지돈 작가는 자기 스타일이 꽤 확고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일부러 추천한 적도 있지만 실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조남주 작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지극히 건조하고, 말 그대로 ‘등장인물’로서만 구실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왜 읽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인터뷰에서 그는 말한다. “저는 일상에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이웃에도 관심 없고 단골 가게도 없습니다. 저는 데면데면하고 이웃끼리 무심하고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아요. 또한 거기서 발생하는 어떤 일이나 무언가를 작품에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지루합니다.” 역시....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다.


개별 소설들의 퀄리티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가격이 참 착하다는 것이다. 3500원에 단편소설 4편이라니. 커피 한 잔 가격으로 꽤 즐거운 호사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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