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쿠시너의 <마스 룸>. 한 달쯤 전에 이 책이 우연히 알라딘 추천 마법사에 떴는데, 낯선 작가인 데다가 출간 직후라 독자 후기도 없었기에 조금 망설이다가 그럼에도 책 소개가 재미있어 보여 반쯤 모험 삼아 주문하게 되었다.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던 주인공이 자기를 스토킹 하던 남자를 자동차 공구로 때려죽여서 수감된 스토리라니, 그 자체로 무척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실제로 읽어보니 모험(?)한 보람이 있을 만큼 아주 재미있었다. 주인공을 비롯하여 여자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의 밑바닥 인생사가 아주 자세히 소개되는데, 캐릭터 하나하나가 무척 독특하고 입체적이면서 사연도 가지각색이라 그 자체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교도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불법적인 항목- 이를테면 술이나 딜도-에 대한 생산과 거래가 이루어지는지, 수감자들 간의 서열 정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지루한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 등 여성 교도소 내의 자세한 생활상이 소개되는 통에 영화 <쇼생크 탈출>이나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을 볼 때와 같은 원초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어쩌면 상상조차 못 해볼 경험 들일 테니.
그런 측면에서 본래 하드코어한 이야기를 싫어하지 않음에도 중간중간 읽다가 쉬어야 할 정도로 하드코어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수감자들이 들어오기 전후로 겪었던 온갖 사건들 역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해볼 하드코어한 일상들이니 말이다. 엄마가 성매매를 하는 동안 낯선 남자의 집 거실에 홀로 앉아 일이 끝나길 기다리는 어린이라든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성매매와 강간을 통해 마약에 노출된 청소년들이라든지. 그런 장면들에서는 영화 <박화영>이나 <똥파리>가 떠오르기도 하고.
다만 소재의 자극성이나 이야기의 흥미로움과는 별개로 읽기가 결코 쉽지는 않은데, 작품 자체가 굉장히 난해하게 쓰여 있기에 평소 소설을 자주 읽던 사람이 아니라면 각종 선정적인 코드에도 불구하고 읽다가 포기할 확률이 꽤나 높을 듯하다.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은 데다가 그들의 사연이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교차-중첩하고, 시점 또한 별다른 안내 없이 끝없이 변화하며 -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3인칭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등등 -, 플롯도 굉장히 복잡하게 쪼개져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아주 재미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좀 죽도 밥도 안 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가가 등장인물 모두를 입체적으로 하려고 과하게 애썼는지, 대부분의 인물들, 하다못해 조연들까지도 대부분 비슷한 비율로 다루고 있는데 그게 다소 밸런스가 안 맞는 느낌이다. 분량을 아예 싹둑 쳐내서 간결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대폭 늘려서 더 거대한 이야기로 만들었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결말도 다소 쓰다가 만 느낌이라 좀 아쉬웠고.
뭐 이런 건 사소한 흠이고, 전반적으로는 아주 흥미롭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최근에 ‘생존’이라는 개념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는 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교도소는 본래 그 목적대로 범죄자들을 재사회화한다기보다는 ‘교도소에 적합한 인간으로’ 사회화시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교도소를 한 번이라도 경험하게 되면 결국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난이나 폭력의 대물림, 그러다 보면 다다를 수밖에 없는 교도소라는 공간, 그리고 사회가 아닌 ‘감옥’에서 생존하기 위해 재사회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같은 시공간을 살지만 마치 SF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범죄자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달리 어쩔 도리가 없기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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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한텐 현실이 너무 얇기만 해. 어떤 사람들한텐 빛이 그대로 통과해 비친다고. -p.56
키스의 편지를 판 여자는 교도소 펜팔 사이트에 어느 고등학교 인기녀의 사진을 썼다. 수감자들은 우연히 발견했거나 교환한, 혹은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사촌, 혹은 그냥 누군가의 사진들을 올렸다. 절대 그들 자신의 사진은 아니었다. 러너- 영치금을 넣어주는 사람-를 구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했다. 러너를 얻는 방법 중 하나가 편지를 써줄 남자를 찾는 것이었다. 키스는 고등학교 인기녀라고 생각한 존재에게 편지를 썼지만, 그건 그저 사진을 도용한 여자일 뿐이었다. 여자는 후두암으로 고생하는 나이 든 수감자로, 인공후두를 썼다. 새미와 가격 흥정을 할 때도 배터리로 작동하는 작은 도구를 목에 대고 말했다. 새미는 대가로 CD 플레이어를 제안했다. 여자가 키스의 주소가 적힌 봉투를 건넸다. -p.191-192
세상사는 우리가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복잡하다. 인간은 우리가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멍청하고 덜 사악하다. -p.266